최근까지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주 관심사는 재판 장기화가 결과에 미칠 영향이었다. 항소심 공판 일정이 미뤄지면서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은 완전히 물 건너가고 애초 사건 수사를 맡았던 담당 검사도 재판이 지연되면서 완전히 손을 뗐다. 게다가 항소심 선고가 나와도 대선열기에 묻혀 여론의 비판적 관심이 점차 희석될 것이란 관측이 대세를 이뤄왔다.
그런데 최근 재판부가 삼성 측을 압박하면서 삼성 측이 마냥 팔짱만 끼고 지켜볼 수 없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게 됐다. 지난 3월 15일 공판에서 재판부는 삼성 측에 ‘이재용 전무 진술서 내용에 대한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삼성 측이 추가 심리를 5월 중에 하자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 공판 일정을 4월로 잡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삼성에버랜드 재판을 담당해온 역대 재판부 중에 ‘삼성이 물밑 영향력을 행사하기 가장 어려운 재판부’란 말이 나돌기도 한다.
재판이 이렇게 전개되다 보니 삼성 측이 그저 대선열기에 묻혀 삼성에버랜드 사건이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되기만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높아진다. 이번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는 ‘희생양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은 삼성 측이 재판 장기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왔다. 지난 1월 19일로 예정돼 있던 항소심 선고공판이 연기된 이후 3월 15일 속행공판에서 삼성 측이 재판부에 허태학 박노빈 두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의 해외출장을 이유로 공판을 5월 이후로 미뤄달라고 신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됐다.
▲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왼쪽), 박노빈 현 에버랜드 사장 | ||
이 같은 관측에 대해 삼성 측은 손사래를 치면서 ‘재판의 조기 마무리를 바란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재판이 빨리 끝나야 다른 데 신경 안쓰고 경영에만 매진해 그룹 성장에 주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 조기 마무리를 원하는 삼성 측이 지난 3월 15일 공판에서 ‘다음 공판 일정 연기’를 재판부에 건의한 것은 어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의 해외출장 일정 강행이 그룹 차원에서 최우선 과제로 삼는 재판 조기 마무리보다 우선시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대한 삼성 측의 입장은 간단하다. 현재 삼성석유화학 사장인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이 경영활동을 펼치는 데 해외출장 일정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삼성 측이 가장 바라는 것은 허태학 박노빈 두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조기에 무죄판결을 받는 것이지만 이럴 경우 검찰 측이 상고할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 삼성이 상정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셈이다.
이렇다보니 이번 재판결과의 십자가를 짊어질 희생양 등장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수준의 형량이 선고될 경우 삼성 측 피고인들이 대법원 항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