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전 회장은 임기 중 주가가 두 배 이상 뛰고 3년 연속 순이익 1조 원 달성이라는 실적을 이뤘지만 직원 성과급을 앞당겨 줬다는 것이 빌미가 돼 자신의 연봉 1억 3000만 원이 삭감되는 수모도 당했고 스톡옵션도 한 푼도 챙기지 못했다. ‘야당과 정치적인 교감이 있다’는 시중의 풍문도 그에게는 이롭지 못했다.
이는 그가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는 게 금융가의 반응이다. 시중은행장 몇 자리 정도는 ‘전관예우’로 확보하고 있던 재경부 등 관련 부처의 고위급 공무원에게 그의 발탁이 좋아 보일리 없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의 퇴장을 김대중 정부 시절 금융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호남 출신으로 증권가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태 씨는 통합 국민은행장으로 무난한 실적을 보였지만 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후 물러났고 삼성증권 사장 출신인 황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방출되는 셈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에게 낙점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행장 퇴임 후 김 전 행장은 건강을 추스르고 강의를 하는 등 현업과 거리를 둔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황 전 회장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반응이다.
벌써부터 황 전 회장을 향한 각계의 뜨거운 구애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금융권 일각에선 황 전 회장이 법무법인 세종에 영입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이에 대해 세종 측 인사는 “각 언론사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확실히 결정된 바가 없다”고만 밝힌다. 세종 외 다른 로펌에서도 황 전 회장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증권 사장을 거쳐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을 겸직했던 황 전 회장의 노하우가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황 전 회장의 향후 행보를 관측하는 인사들은 삼성 측을 눈여겨보기도 한다. 재계의 몇몇 인사들은 “황영기 전 회장은 삼성 측이 전략적으로 키우는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삼성생명 삼성카드 등 대형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삼성그룹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할 가능성이 업계 인사들 사이에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 지주회사를 맡을 인물로 황 전 회장이 거론되곤 했다. 삼성의 금융업 확대 차원에서 대형은행 인수 가능성도 종종 거론되는데 이 시나리오 역시 황 전 회장을 빼놓지 않는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에 임기인 2008년 3월까지 우리금융 매각은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음 정권에서 우리금융 매각작업이 본격화할 경우 우리금융의 면면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황 전 회장보다 더 맞춤한 우리금융 인수작업 지휘자는 없을 것이다.
황 전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자금팀장,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 삼성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등을 거쳐 삼성증권 사장을 지내는 등 삼성그룹의 요직만 골라 지냈다. 게다가 여전히 삼성그룹 총수일가의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실패한 황 전 행장이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배경으로 삼성그룹을 꼽기도 한다.
우리금융 매각작업은 다음 정권의 가장 큰 빅딜로 꼽힐 만한 대형사업이다. 게다가 삼성이 후보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기에 황영기 전 회장의 이후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