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유통단지 투시도 | ||
신세계는 오는 6월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상거리에 국내 최초로 명품 아울렛이라는 새 업종을 선보인다.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은 신세계가 미국 첼시와 합작으로 설립한 신세계첼시가 여주유통단지 안에 짓고 있는 명품 할인매장이다. 이 아울렛은 일본 고템바 아울렛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크기다. 신세계첼시는 출시된 지 1년 정도 지난 유명 패션·잡화 매장을 열고 명품들을 정상가보다 25~65% 정도 싼 값에 팔 예정이다.
개장을 한 달여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이 아울렛이 편법 논란에 휩싸인 사연은 이렇다. 신세계첼시는 사업추진 초기단계인 지난해 초 여주유통단지 안에 각각 1만 2637㎡(약 3861평)와 1만 4352㎡(약 4342평)짜리 크기의 건물 2개 동으로 구성된 명품 아울렛을 짓기로 하고 여주군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았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허락을 얻은 신세계첼시는 곧바로 부지조성에 들어갔고, 공사는 별다른 탈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된 지 반 년여가 흐른 지난해 8월 문제가 발생했다. 건설교통부에서 신세계첼시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위반했다며 공사를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
건교부는 이 지역이 자연보전권역이어서 판매시설이 1만 500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관계법령을 신세계첼시가 위반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신세계첼시와 여주군은 2개의 건물이 폭 20m 너비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눠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건교부는 ‘대지가 연접하고 소유자가 동일하면 면적을 합산한다’는 법 조항을 근거로 공사를 중단하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쪽은 신세계첼시보다는 오히려 여주군 쪽이었다. 막대한 경제파급 효과가 예상되는 대형유통업체의 지역유치가 무산될 위기인 데다, 이미 공사를 해도 좋다고 허가까지 내준 상황이어서 잘못하면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주군은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의뢰하며 신세계첼시를 우회지원했다. 원래 법제처는 지난달 20일 3차 법령해석 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주군이 연기 요청 공문을 보내옴에 따라 일정을 연기, 이 문제에 관해 법제처는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건교부의 공사중지 요청이 있었고, 법제처는 아무런 의견을 내놓지 않았음에도 신세계첼시는 공사를 계속 진행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자칫 사업이 중단돼 그동안 공사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날릴 수 있는 일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정대로 건물을 지어나갔던 것. 마치 이 문제에 관해 묘안이라도 마련해 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건교부가 사업에 제동을 건 지 8개월여가 흐른 지난 4월 10일, 신세계 본사에서는 이사회가 열렸다. 신세계는 이날 신세계첼시가 건축주로 되어 있는 건물 2개 동 가운데 1개 동의 건축주를 신세계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연면적이 1만 2764㎡인 A 동은 기존 건축주인 신세계첼시 명의로 남게 됐다. 대신 연면적이 1만 4354㎡인 B 동은 신세계가 ‘자산매입’ 형태로 129억 원에 사들인 다음 신세계첼시에 임대하기로 했다.
신세계는 매장에 들어오기로 한 해외 브랜드와 입점 계약을 맺어 놓은 상태에서 사업 추진이 더 늦어지면 계약 불이행에 따른 위약금 문제는 물론 회사 신뢰도까지 훼손시킬 수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건축주 명의 변경이라는 간단한 절차 하나로 8개월여간 ‘짓는다’, ‘안된다’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던 사건은 어이없이 일단락됐다. 두 건물의 등기부상 주인이 달라짐으로써 완전히 다른 회사 소유가 된 이상 건교부가 제동을 걸 명분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묘수에 가까운 아이디어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느냐는 점이다. 신세계 측은 “1억 달러에 달하는 외자유치 파트너와의 신뢰관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편법에 가까운 이 아이디어는 사실상 여주군에서 제공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는 것.
실제로 여주군 주변에서는 “신세계첼시의 허가가 무산될 경우 소송 등의 후유증은 물론 1억 달러의 외자 유치와 3000여 명의 고용창출 등이 물거품 될 것을 우려해 법인 명의 변경 등을 여주군이 권유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신세계첼시를 유치하기 위해 여주군이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문은 일부 지역 언론에서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여주군 관계자는 “우리 군이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하고 개장 대비 추진 상황 보고회를 갖는 등 홍보를 강화하면서 일각에서 이를 특혜로 받아들인 것일 뿐”이라며 “신세계첼시에 명의 변경을 권유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주군이 그동안 신세계첼시를 유치하기 위해 들인 공을 감안하면 특혜는 아닐지라도 아울렛매장 공사가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을 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여주군은 그동안 프리미엄 아울렛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지역주민들과 정부, 언론 등을 상대로 다각적인 홍보와 지원활동을 펼쳐왔다.
이기수 여주 군수도 나서서 “유통단지가 개장되면 여주군의 세수 증대는 물론 3000명의 고용창출 효과와 연간 600만 명의 방문객을 통한 경제, 문화적 파급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어쨌든 논란 속에 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은 계획대로 6월 1일에 개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주에 입주를 희망했다가 같은 법조항 때문에 무산된 다른 업체들이 신세계첼시의 묘수를 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문제로 남아있다.
여주군에는 그동안 신세계첼시 못지 않게 경제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들이 유치를 희망했지만 관련 법에 묶여 줄줄이 유치가 무산됐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만 모 전자회사와 맥주 공장 등이 여주 유치를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만일 이들이 여러 개의 건물을 각기 다른 계열사 명의로 짓겠다고 나설 경우 자연보호를 명분으로 불허입장을 고수해왔던 정부는 이를 어떻게 막아낼지,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 ‘묘수’를 너도 나도 들이댈 경우 벌어질 난개발 문제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