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사돈기업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효성그룹이 최근 정보팀 조직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 마포에 있는 효성그룹 본사. 일요신문DB |
“만약 정권이 바뀌면 고생길이 훤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기업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효성과 코오롱은 영순위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특히 효성은 조석래 회장 체제가 몇 년 내에 끝나고 세 아들이 서로 분리될 것이라는 소문도 자자합니다. 이런 판에 제의가 온다 한들 효성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효성그룹의 앞날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재계 관계자의 조심스런 말이다. 효성그룹의 재계 순위는 25위권. 그렇지만 지난 5년간 효성그룹에 쏟아진 관심은 삼성, 현대차, SK, LG, 이른바 ‘빅4’에 못지않았다. 조석래 효성 회장이 2007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제31, 32대 전경련 회장을 지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탓이 더 크다.
지난 5년간 효성이 움직일 때마다 예의주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역시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이유였다. 불법 비자금 의혹과 계열사 고의 누락 신고 등 효성과 관련한 크고 작은 ‘특혜’ 혹은 ‘봐주기’ 논란은 있어왔다. 특혜 시비가 절정에 다다른 것은 2009년 효성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다. 당시 자산 8조 원대인 효성이 13조 원대인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니 오해를 살 만했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효성은 하이닉스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조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서 물러난 뒤부터 효성은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조용했다. 이따금 아들 삼형제가 번갈아가며 지분을 늘리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후계구도와 관련해 잠시 거론됐을 뿐 그 외엔 별달리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효성은 워낙에 소비재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어서 이전에도 크게 주목받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며 “대통령 사돈기업이서 더 몸조심을 하는 탓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사돈기업’이라는 꼬리표는 효성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듯하다. 그러나 효성 관계자는 오히려 “특혜는커녕 오히려 덕본 것 하나 없이 더욱 몸을 낮춰야 했다”며 “고생 시작이 아니라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효성 내의 생각과 달리 재계에서는 여전히 효성에 불안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효성이 최근 정보팀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효성은 신설 정보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들이나 일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용히 접촉하고 있다.
효성 측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는 한 대기업 인사는 “처음에는 그냥 규모도 꽤 되고 전통도 있는 대기업에서 정보팀을 만든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면서도 “그렇지만 그 기업이 효성이라는 말에 바로 관심을 접었다”고 털어놨다. 정권이 교체되면 보나마나 고생길이 훤할 텐데 그런 곳에 가기 싫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가 우려한 부분은 또 있다. 재계에서는 이미 조 회장 이후 세 아들, 즉 조현준 효성 사장, 조현문 효성 부사장, 조현상 효성 부사장이 각각 갈라설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인력으로 들어갔다가 어느 한 쪽에 줄을 서기도 만만치 않다는 것.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업이 정보팀이나 대관업무 파트를 조직하거나 확대하는 시기는 큰 이슈에 직면해 있을 때다. 이를테면 재판을 앞두고 있거나 큰 공장을 지으려 할 때 등의 경우 관련 법규나 정보를 파악하고 선취하기 위해 조직한다는 것. 따라서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알아봐야 곱지 않은 시선만 받을 게 뻔하고 그런 만큼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또 대관업무로 포장돼 있는 정보팀은 해당 이슈가 지나면 효용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보나 대관업무를 담당하던 인력들이 다른 부서로 재배치되거나 아예 퇴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정보팀과 대관업무 파트를 조직하지 않으려 하는 추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인력 재배치의 문제도 있고 은밀히 움직여야 하는 탓에 예산 책정하기도 쉽지 않다”며 “게다가 외부의 정보만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 정보도 얼마든지 유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게다가 요즘에는 로펌이 하도 활성화돼 있어 굳이 따로 정보팀을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처럼 고급 정보를 공유하고 수집하는 일이 쉽지 않은 시대라 설사 정보팀을 조직한다 해도 꾸려나가기가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재계 인사도 적지 않다. 재계 한 고위 인사는 “대기업 정보담당 인사들의 모임도 있었던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에는 그런 모임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오너에게 보고도 하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임이 거의 없어졌다”며 “그만큼 사회가 오픈돼 있어 웬만한 정보는 얻기가 쉬워진 반면 정말 고급 정보는 얻기 힘들어졌다”며 정보팀이 유명무실해졌다고 알렸다.
이런 상황에서 효성이 소수의 인원으로 정보팀을 조직하려 한다는 것은 대통령 사돈기업으로서 정권 교체를 대비하는 성격이 강한 것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효성과 관련해서는 현재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등 큰 이슈가 없다. 효성 관계자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홍보와 정보 감각을 갖춘 홍보맨들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맞춰 인터넷 정보를 검색, 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충원하려는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