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도 금산법 완화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 ||
삼성과 관련해 가장 많은 질타를 받은 한나라당 인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이 전 시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국내 산업 자본이 은행 등 금융 산업의 소유 및 경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금산분리 원칙의 지나친 강조에 따라 국내 은행들의 외국자본 지배가 심화되고 있어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이 전 시장의 대선 라이벌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금산 분리 철폐를 주장한 바 있어 주목을 받았다. 한나라당 잠룡들의 이 같은 발언들은 그동안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맞물려 주목을 받았던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논란이 되고 있는 시기에 터져 나와 주목을 받는다.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가 상호지분 5% 초과 보유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금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박 두 잠룡의 금산분리 비판 발언에 시선이 쏠리는 것이다.
금산법 개정안을 골자로 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대표주자는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었다. 이들 모두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발언에 즉각 반박 주장을 펼쳤다. 특히 심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주장은 거대재벌 삼성공화국 후보로 낙점받기 위한 정치적 커밍아웃”이라 쏘아 붙일 정도였다. 시민단체들도 이 전 시장 측의 금산분리 개정 주장에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이 전 시장과 한나라당의 친 삼성 정서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동안에도 한나라당 인사들의 금산 분리 개정 관련 발언들이 쏟아졌다.
범여권이 아직 혼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선정국에 접어든 현 정치권을 두고 한나라 대 비한나라 구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런 까닭에서 비한나라 세력의 금산 분리 찬성론과 한나라당의 금산 분리 개정론의 대립이 이번 대선 정국을 달굴 최대 경제 현안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자칫 한나라당을 둘러싼 ‘친 삼성 대 반 삼성’ 구도 출현 가능성으로 연결되곤 한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금산 분리 개정 발언이 삼성그룹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대목은 바로 거대 재벌의 은행 소유 가능 여부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재계에선 비금융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4% 제한선을 수정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만약 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이 한나라당 인사들 주장처럼 허물어진다면 삼성그룹 같은 거대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 이건희 삼성 회장 | ||
삼성증권 사장 출신인 황 전 행장은 얼마 전 우리금융 회장 경쟁에서 박병원 전 재경부 차관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금융권의 블루칩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사후 관리에도 능한 삼성이 황 전 행장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게 될 경우 초대 행장은 황 전 행장 몫이 될 것이란 평마저 나돌 정도다.
지난해 지방선거전 당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한나라당행 가능성이 거론됐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나라당의 외부인사 영입 담당자가 윤 부회장을 만나 영입을 타진했으나 결국 윤 부회장이 손사래를 쳐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은 한나라당에 입당해 제주지사직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한나라당이 삼성 CEO 영입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을 비판적으로 보는 여권 인사들 사이에선 삼성이 노무현 정부 4년 동안 충분한 현금을 쥐고도 투자에 인색했던 것이 최근 환율 하락과 맞물려 실적부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보는 여권과 삼성의 잣대가 판이한 셈이다.
여권을 비롯한 비한나라 세력이 주도한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삼성 측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묘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삼성이 올 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을 지나며 정치권 판도가 바뀔 것으로 보고 아예 금산법 개정안 폐기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 또한 삼성이 금산 분리 개정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세력과 교감을 이룰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눈여겨볼 대목은 최근 윤증현 금감원장의 발언.
윤 원장은 <중앙일보>에 실린 5월 10일자 인터뷰에서 “시가총액 20조 원의 우리금융을 인수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든다.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남은 우리은행마저 외국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막기 위해서도 금산분리는 완화돼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런 ‘금산 분리 완화’에 대한 각계의 발언이 우연의 일치인지 삼성의 장기인 ‘여론 마사지’인지 주목을 받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