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투명사회협약 보고회에 참석한 모습. 29일 에버랜드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 소환설이 다시 불거질 수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현재로선 또 다시 공판이 연기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재판 결과에 따른 파장에 각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당사자인 삼성과 이건희 회장은 물론, 이들을 둘러싼 재계와 법조계, 그리고 대선정국을 맞이한 정치권이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에버랜드 2심 선고 후폭풍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 측은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의 선고공판을 초조한 심경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변호인단이 재판과정을 통해 무죄판결을 위해 노력은 해왔지만 공판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여론을 의식해 무죄의 당위성을 드러내놓고 주장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일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삼성 측이 그동안 검찰·법원에 들여온 공 때문에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것’이라 보기도 한다. 한때 삼성공화국론의 빌미가 됐던 삼성의 초호화 법무진용과 더불어 검찰·법원 조직 내 ‘친 삼성 정서’ 확산 기미가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렸던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삼성 측이 수사당국인 검찰보다 재판부인 법원 측에 더 많은 공을 들였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세인들 관측대로 삼성의 법조 조직에 대한 로비가 먹혀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들어 에버랜드 재판과정이 원고인 검찰보다는 피고인 삼성에 정황상 유리하게 형성되기도 했다. 에버랜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1심에서 재판장 두 명을 거치고, 2심에선 세 번째 재판장이 들어섰던 점이나 전환사채 발행과정에서 이 회장 일가 공모 여부에 대한 법원의 추가자료 요구 등은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든 요인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삼성 임원 출신 박 아무개 씨가 전환사채 발행 과정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소환설이 시간이 흐르면서 묻혀버린 점도 이번 5월 29일 선고공판에서 삼성 측이 무죄를 기대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 허태학(왼쪽), 박노빈 | ||
만약 허태학 박노빈 두 전·현직 사장이 삼성 측 기대대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면 공소시효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1996년 당시 에버랜드 대표이사였던 허태학 씨와 재무담당 이사였던 박노빈 현 에버랜드 대표를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은 공소시효 만료를 딱 하루 앞둔 2003년 12월 1일이었다. 업무상 배임혐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공소시효 하루 전에 기소한 사건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항소 없이 판결이 확정되면 하루 만에 이 사건의 시효가 만료된다. 만약 무죄 판결이 나오고 검찰이 이에 항소하려면 단 하루 만에 준비를 마쳐야 하는 셈이다.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다면 검찰이 항소해 대법원까지 이 사건을 가져가더라도 최종 판결 또한 무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항소심 재판장 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법리적 측면에서 삼성 측 피고인의 유죄를 법정에서 입증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까닭에서다.
그러나 삼성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5월 29일 2심 판결에서 삼성 측 피고인들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이는 한동안 잠잠했던 에버랜드 수사에 불을 지르는 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삼성의 지배구조를 비판해온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이를 들고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한 까닭에서다.
유죄 판결의 여파는 정치권에도 미칠 전망이다. 현재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 모두 ‘금산 분리’에 대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만약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요구가 현실화된다면 금산법 개정안 국회 통과로 일대 변화가 불가피한 삼성그룹 순환지배구조의 현상유지를 기대해볼 수 있다. 삼성그룹 같은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다.
유죄판결이 나오고 삼성 측의 항소로 3심이 본격화될 시점엔 한나라당은 물론 범여권의 대선후보 윤곽도 드러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에 한참 못 미치는 지지율을 기록해온 범여권이 한나라당의 ‘친 삼성 경제관’을 가만 놔둘 리 없다. 이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재판은 다시 비판적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검찰의 삼성 수사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평가받는다. 5월 29일 판결 여부에 따라 올 하반기를 맞이하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의 표정이 극단적으로 갈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