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MM은 지난 2월 21일 SK해운이 보유한 일부 자산 인수 등과 관련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공시했다. 아직까지 인수대상 자산, 인수금액 등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SK해운은 탱커선(원유선·제품선), 가스선(LNG운반선·LPG운반선), 건화물선, 벙커링선 사업을 보유 중이다. 다만 HMM이 현대상선 시절인 2014년 LNG사업부를 IMM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하면서 2029년까지 해당 사업에 진출하지 않기로 약정했기 때문에 SK해운의 LNG사업부는 인수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대 중반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HMM은 벌크선과 각종 터미널을 매각하고 컨테이너선 중심의 사업 구조로 재편했다. 이에 따라 과거 60~70%였던 컨테이너 매출 비중은 2024년 3분기 누적 86.3%, 연간 잠정실적 기준 86.7%로 증가했다. HMM이 벌크선을 확충해 선종을 다각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우면서 SK해운 인수도 검토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SK해운을 성공적으로 인수할 경우 이익 안정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2024년 3분기 말 연결기준 HMM의 벌크선대 중 장기계약이 체결된 선박은 9척(23%)뿐이며, 나머지 77%의 선박은 시황 변동에 영향을 받는 구조다.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벌크선 사업은 원래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내기 어렵지만 10~20년의 장기계약이나 5년 이상의 중기계약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컨테이너선에서 시황 악화로 손실이 나더라도 벌크선에서 꾸준히 벌충하면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SK해운은 2024년 기준 원유선 22척, 제품선 1척, LNG 운반선 12척, LPG 운반선 14척, 건화물선 10척, 벙커링선 7척 등을 보유하고 있다. 장기운송 계약 비중은 2019년 44.7%에서 2024년 3분기 기준 69.7%로 증가했다. HMM이 인수를 유력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탱커선의 경우 매출 대부분이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등 우량 화주와의 장기계약에서 발생한다. LPG 운반선 역시 전체 매출이 SK가스와 트라피구라(Trafigura)와의 장기계약에서 발생하고 있어 이익 안정성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되면서 HMM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적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월 21일(현지시각) 중국 선사 및 중국산 선박과 관련한 국제 해상운송서비스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USTR이 발표한 추진안에 따르면 중국 선사의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선박당 최대 100만 달러, 선박의 용적물에는 톤(t)당 최대 1000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미국 측의 의지가 현실화할 경우 각 대륙별 항구를 순차적으로 방문해 화물을 싣고 내리는 원양 컨테이너선 업계에는 지각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에서 북미로 향하는 화물의 비중과 노선의 비중이 가장 큰데 HMM의 중국산 선박 비중이 2% 수준으로, 글로벌 선사 중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HMM에 분명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를 집행해 사업 다각화를 하기 좋은 시점인 것으로 평가된다. 벌크선대를 확충하면 미국과의 거래를 더욱 늘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예상되는 해운 불황을 고려해 신중한 투자 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SK해운의 높은 부채 비율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SK해운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순차입금은 5조 원, 부채비율은 443%다. HMM은 20%, 팬오션은 66%, 대한해운은 100%, 에이치라인해운은 230%의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동종업계 내에서도 유독 높은 편이다.
SK해운의 몸값도 변수다. LNG사업부를 제외한다고 쳐도 최대 약 4조~5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 HMM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하림그룹이 6조 4000억 원의 인수가를 써내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결국 협상 과정에서 HMM 인수는 불발됐다. HMM의 시가총액이 18조 원에 달한 상황에서 올해 4월로 예정된 영구채 추가 전환에 SK해운 인수까지 더해지면 HMM 매각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LNG사업부를 인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SK해운의 매물로서의 매력도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와 가스를 증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원유선뿐만 아니라 LNG운반선의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내수와 부동산 시장 경기 둔화로 인해 철광석·석탄 등의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다른 벌크선 수요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K해운의 기업가치가 ‘고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운업은 현재 침체기에 돌입 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월 21일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595.08로 7주 전과 비교해 36.3% 폭락했다. 벌크선 시황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도 800~1000을 오고가며 지난해 최고점(2419)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상황이다. 미·중 무역갈등 격화와 선복 공급 확대로 인한 불황은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3조 40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던 HMM이 팬데믹(대유행) 기간에 그걸 다 갚고 15조 원가량의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는 것이 해운업의 특성을 말해준다. 무너지기 시작하면 잠깐 사이에 유보금도 다 녹아내릴 수 있는 게 해운업이다”라며 “불황이 불 보듯 빤한데 현재 부채비율이 높은 SK해운을 몇 조 원씩 주고 살 여유가 없다. LNG운반선 구입하는 것도 아닌데 벌크선대를 늘리는 건 한가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 역시 “HMM은 이미 용선보다 자선 비중이 훨씬 높다. 불황기 때마다 헐값에 배를 판 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선가가 높아져서 고생한 경험이 있는데 굳이 고점에서 인수를 결정할 이유가 없다”라며 “사업 다각화를 하더라도 벌크로 다각화하는 건 충분한 리스크 헷지(위험 분산)가 못 된다. DHL 같은 회사들처럼 육해공을 포괄하는 복합운송기업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HMM 관계자는 “우선협상자로 선정돼서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더 확정된 것이 없어서 말씀드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앤코 관계자 역시 “현재 시점에서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없다”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