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 기자들은 살기 힘들다.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두가 자기만의 플랫폼을 갖게 됐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도 실시간으로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이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뜻이다. 철저한 사실과 조사에 입각하지 않은 수준 낮은 기사는 금세 탄로 난다. 그러니 기자들은 더 힘들게, 바쁘게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의사와 판사 등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건너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펼쳐내니 대중도 호응한다. 웹소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작가 등단도 쉬워졌다.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 제작사들이 앞다투어 기꺼이 ‘작가’로 모신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대표적이다. 동명 웹소설을 쓴 한산이가(본명 이낙준) 작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의료 정보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에도 참여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소신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판사 출신인 문유석 작가는 ‘전문가 작가 시대’를 연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법정물인 ‘미스 함무라비’(2018)와 ‘악마판사’(2021)를 썼다. 올해는 tvN ‘프로보노’(가제)를 공개한다. 이외에도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의 원작 웹툰은 간호사 출신인 이라하 작가의 작품이고, 군무이탈 체포조의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헌병대 출신 작가 김보통의 만화에 뿌리를 뒀다.
전문가들이 직접 쓴 전문직 드라마를 보는 대중은 즐겁다. 몇몇 유명 작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유능한 신진 작가들이 발굴, 투입되면서 이야기가 다양해 졌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작가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서 회당 집필료를 낮추고 드라마 제작 시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게 된다. 단순히 유명 작가의 이름값만 믿고 무리하게 제작을 추진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문직에 오랜 기간 몸담던 이들이 빠르게 드라마 시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는 변화하는 시스템 덕이다. 한국 드라마 시장은 지나치게 작가 의존적이다. 해외 드라마 시장은 대부분 집단 집필 시스템이다. 할리우드 마블 시리즈에는 100명이 넘는 작가진이 붙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메인 작가 1명이 드라마 한 편을 모두 쓴다. 작가의 힘이 막강한 동시에, 작가가 잘못된 방향을 잡으면 위험을 피해갈 방법이 딱히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여러 작가가 투입되는 드라마가 늘고 있다. 메인 작가가 여럿인 경우도 있고, 다양한 보조 작가가 붙는다. 그러니 드라마 문법과 작법에 익숙지 않은 전문가들도 비교적 손쉽게 드라마 시장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전문직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작품에 대한 맹신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직 출신 작가’는 이미 ‘전문가’의 영역에서 벗어난 존재다. ‘작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 전문적 식견이 바탕이 되지만 상상이 상당히 가미된다는 뜻이다. 그 경계를 절묘하게 지우는 것이 전문직 드라마의 재미이자 작법의 묘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칫 대중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전문직 출신 작가의 활약을 통해 드라마 시장이 더욱 풍성해질 수는 있지만,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임은 분명히 해야 한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