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 ||
지난 5일,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은 조선호텔에서 열린 디비코의 디빅스플레이어겸 PVR(개인용 비디오레코더)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디비코의 신제품들을 직접 써보는 등 큰 관심을 보이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디비코는 이찬진 사장이 이끄는 드림위즈의 경쟁사다. 드림위즈는 올해 초 티비오(TVIO)라는 PVR 겸 디빅스플레이어를 선보였다. 두 회사의 제품은 디지털 TV 수신 기능, PVR 기능 등에서 유사점이 많다.
평소 외부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지만 디지털 기기 마니아로 유명한 이 사장이 경쟁사의 신제품 발표회에 나타난 것은 별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이 사장의 주변 정황을 살펴보면 이날 그의 등장을 구경삼아 나온 나들이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근 드림위즈는 KT의 자회사인 KTH와의 합병설에 휩싸여 있다. 지난 4월 20일 KTH가 드림위즈 전환사채(CB) 5억 원어치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두 회사의 합병설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KTH는 인터넷 포털 ‘파란’의 부진을 만회할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드림위즈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드림위즈 측은 “아직 인수합병(M&A)과 관련해 결정된 것은 없다. 지금은 MOU(양해각서) 수준의 업무 제휴 관계”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콘텐츠나 서비스 개발 외주를 많이 하는 KTH와의 안정적인 업무 제휴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찬진 사장도 신제품 발표회장에서 “두 업체의 처지로 볼 때, 협력체제를 잘 꾸리면 시너지 효과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렇다고 인수와 영입 얘기까지 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전환사채를 인수한 KT 쪽 생각은 다른 듯하다. KT는 이미 4월 초에 KTH 내부에서 드림위즈 인수를 위한 전담반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행정고시 출신이 많은 KTH의 경영진이 이 사장의 기획력과 개발 능력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송영한 KTH 사장도 “드림위즈처럼 경험과 아이디어가 많은 업체를 인수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드림위즈의 TVIO를 KT 차원에서 활용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타임머신’ TV와 디빅스플레이어를 하나로 묶어 PC에 연결해 모든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TV로 이용할 수 있게 한 TVIO는 차세대 인터넷 시장의 주력이 될 것으로 보이는 IPTV와 결합 가능성이 높은 제품이다. 이 제품을 PC에 연결하면 밖에서도 자신의 집에 있는 TV 방송을 볼 수 있다. 이 아이디어를 KT에서 향후 IPTV 서비스에 접목하기 위해 투자했다는 얘기다.
드림위즈 측도 최근 단순한 구조조정이라고만 보기에는 시기가 절묘해 보이는 여러 가지 작업을 마무리해 놓은 상태다.
드림위즈는 최근 자금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5년 드림위즈의 상장 과정에서 분식회계 구설수에 휘말려 담당 회계사가 자살하는 등 악재가 겹치기도 했다. 드림위즈는 수익성 면에서도 고전 중이다. 드림위즈는 2004년부터 적자로 돌아서면서 매년 4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내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8월에는 홈페이지 구축 서비스를 제공해 왔던 네띠앙이 문을 닫으면서 고객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친 상태에서 드림위즈는 지난해 12월 잠실 사무실에서 강변역 근처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직원 수를 120여 명에서 90여 명으로 줄였다. 인력 충원도 하지 않고 있다.
또 올해 1월 3일에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5분의 1 무상감자를 실시했다. 이로 인해 드림위즈의 자본금은 76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줄었다. 회사 경영권에 관심이 있는 외부 투자자라면 한 번쯤 노려볼 만한 규모로 몸집을 줄인 것이다. 실제로 드림위즈는 감자 후 이곳저곳에서 투자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찬진 사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이번 KTH의 투자 제안에 굳게 닫았던 회사문을 열었다. 드림위즈 측은 “급하게 일을 진행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5월 안으로 구체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 회사의 합병이 현실화되면 남은 문제는 이찬진 사장의 거취다. 업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이 사장이 KT의 최고기술경영자(CTO)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다.
이찬진 사장은 다소 보수적인 경영스타일인 KT 쪽에서 갖지 못한 풍부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고 있어 그가 KT에 합류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특히 KT는 지난해 포털 시장 석권을 노리고 야심차게 출범시켰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파란’을 되살리는 데 이 사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와 관련 이 사장이 최근 새로운 개념의 포털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드림위즈는 최근 기존의 나열식 정보에서 벗어나 클릭 혹은 추천수가 높은 정보 위주로 보여주면서 사용자 참여를 유도하는 신개념 포털을 사내 시범 서비스 중이다.
이 새 포털의 이름은 ‘포크’로 잠정 결정된 상태다. ‘생활 양식을 같이하는 사람들, 민중, 민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찬진 대표가 인터넷을 통해 지향하는 참여, 개방, 공유의 철학을 담아 직접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크’는 검색 시 키워드 혹은 이슈 별로 다른 검색자들이 이미 검색했던 루트를 따라 간다. 쉽게 말해 뉴스를 검색할 때 사람들이 많이 읽었던 뉴스 순서로 검색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서비스가 KT와의 합병 이후를 감안해 개발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드림위즈 관계자는 “포크는 KTH와의 사업협력 전부터 별개로 준비해온 서비스”라며 “M&A 여부와 관계없이 협력 방안에 따라 KTH와 연계해 서비스할 수도 있으나 아직 베타 서비스 중이라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
‘두뇌’가 필요한 KT와 ‘자금’이 필요한 이찬진 사장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