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변호사는 “적대적 인수에서 나오는 모든 공격과 방어 수단, 스토리, 인물들이 다 등장했다. 미국에서 교과서처럼 여기는 베스트셀러 ‘문 앞의 야만인들’과 같은 수준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이번 고려아연 분쟁을 평가했다. 그는 “중요성에 비해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기업이라 사건 가치가 저평가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분쟁은 단순한 경영권 다툼을 넘어 국내 기업 지배구조 전반에 걸친 핵심 쟁점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특히 해외 자회사를 활용한 순환출자 구조, 집중투표제, 이사 선임 문제 등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거의 모든 쟁점이 집약돼 있어 주목할 만하다.
첫 번째 쟁점은 고려아연이 주총 하루 전날인 1월 22일, 해외 손자회사인 썬메탈코퍼레이션(SMC)을 통해 최 회장 일가와 영풍정밀로부터 (주)영풍 지분 10.33%(19만 226주)를 575억 원에 매입함으로써 MBK와 영풍 측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이다. 이로 인해 고려아연-SMC-영풍 간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되었고,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될 수 있게 됐다.
상호주란 두 기업이 서로 상대방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며, 상법은 발행주식 총수의 10%를 초과하여 보유할 경우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100% 자회사인 SMC가 영풍 지분 10.3%를 확보하면서, 상법의 상호주 규정에 따라 임시주주총회에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5.4%에 대한 의결권이 전부 무력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방어 전략은 과거 세이브존 vs 이랜드, 에스텍 vs 동성화학 분쟁 등 국내 기업들이 단 2번 정도만 사용한 매우 희귀한 방식이다. 특히 SMC가 해외 자회사이자 유한회사라는 특성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A 변호사는 이 문제에 대해 “유한회사라서 의결권 제한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우리 법상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에 완벽히 대응되는 외국 회사 형태는 없지만, SMC의 법적 성격을 살펴보면 유한회사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소송에서 다툼이 되는 자료도 많아서 외부에서 들리는 이야기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고려아연이 처음에는 SMC를 유한회사라고 공시했다가 나중에 주식회사라고 주장을 번복한 부분과도 연관된다.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관해 MBK 측은 순환출자 구조 형성이 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려아연은 해외 자회사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B 변호사는 “입법론적 관점은 별개로 하더라도, 현행법상 고려아연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B 변호사는 “탈법행위로 볼 여지는 있으나 이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수사기관의 의지와 해석에 달려 있는데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부분 법조계 의견처럼 공정거래법은 엄격하고 좁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2월 10일 김광일 MBK 부회장은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 출연 당시 “고려아연 순환출자 방식이 인정된다면 정치권이 그동안 규제하려 했던 순환출자 구조가 부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광일 부회장이 말한 ‘국내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에 A 변호사도 동의했다. A 변호사는 “순환출자 구조를 막기 위한 추가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은 배임 혐의다. MBK는 최윤범 회장이 개인적 지배권 보전을 위해 고려아연 손자회사인 SMC를 동원하고 회사 자금을 사용했다며 배임 혐의를 제기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 주식을 시장 가치에 매입한 것은 투자 가치가 있는 행위”라며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A 변호사는 “회사에 대한 배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A 변호사는 “우리 형법상 배임죄는 회사에 실질적 손해가 발생해야 성립하는데, 시가에 주식을 매입했다면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임이 성립하려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A 변호사는 다른 측면에서 법적 책임 가능성을 제시했다. A 변호사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관점에서는 지배주주 경영권 방어를 위한 행위로 볼 수 있어 의무위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사상 의무위반은 인정될 여지가 있으나 현행 한국 법제에서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MBK·영풍 연합에 따르면 현재 SMC 이사회는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와 이승채 SMC 대표 두 명으로만 구성돼 있다. SMC가 영풍 지분을 매입하기 직전인 1월 10일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마이클 최가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추가 이사 선임 없이 현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씨 일가가 법적 책임 문제를 예상하고 이사회에서 미리 사임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B 변호사는 “호주법에서는 한국과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SMC의 영풍 지분 매입에 대해 호주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더 엄격하게 해석된다면 책임을 물을 여지도 있다”며 “최윤범 회장의 최근 사임 결정도 이러한 법적 리스크를 고려한 것일 수 있으나 이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임시주총 관련 영풍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 대해 A, B 변호사 모두 MBK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B 변호사는 “MBK 측이 제기한 논리는 크게 세 가지인데 공정거래법 위반, 외국법인 문제, 유한회사 문제 등이다. 이 가운데 SMC가 유한회사라는 점이 가장 유력한 인용 사유가 될 것”이라면서 “외국법인 문제도 인용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예상했다.
특히 B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가처분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는 법원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이곳은 성향상 꼼수, 편법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이 모여 있다”면서 “이들이 고려아연이 했던 방식을 선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귀띔했다.

가처분 인용 시 후속 영향에 대해 A 변호사는 “가처분은 본안 판결이 아니기에 이번 정기주총에서 이사들의 새 선임 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또 A 변호사는 “정기주총에서 이사를 새로 선임하더라도 집중투표제 적용 여부를 두고 추가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집중투표 부분도 효력정지되면 판단이 쉽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집중투표가 적용되는 상태로 이사를 선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BK 측 김광일 부회장은 ‘언더스탠딩’ 채널에서 “가처분이 기각되더라도 시기 문제일 뿐 2년 이후에는 이사회를 장악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이에 대해 A 변호사는 “법원이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더라도 상호주 문제는 여러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원론적으로는 김광일 부회장의 말이 맞지만, MBK는 고려아연의 또 다른 꼼수를 걱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례는 국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법 개정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자회사를 통한 순환출자 구조 문제는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진다. 시총 20위권 기업의 이번 경영권 분쟁은 향후 국내 기업 지배구조 분쟁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고려아연 소액주주들은 최윤범 회장 등을 자본시장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최 회장이 주도한 유상증자 과정에서 허위 증권신고서로 인해 주가 폭락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해 해외 계열사를 통한 상호출자 구조를 형성한 것에 대해 조사 중이다.
고려아연은 “MBK와 영풍이 허위사실과 왜곡으로 여론을 호도하며 고려아연의 장기적 기업가치와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고려아연은 “적대적 M&A가 실패했음에도 공세를 지속해 고려아연 주주, 임직원, 계열사, 협력사, 지역사회에 막대한 피로감을 주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고려아연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