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고려아연은 (주)한화 지분 7.25%를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한화에너지에 매각했다. 주당 매매단가는 주당 2만 7950원이었다. 이는 고려아연이 2년 전 한화 측과 자사주 교환 방식으로 취득했던 매매단가보다 3% 낮은 수준이었다. 당시 거래로 49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MBK 측은 “마땅히 프리미엄을 받아야 할 주식을 헐값에 넘겨 고려아연과 주주들에게 큰 재산적 손해를 끼쳤다”며 “최윤범 회장은 이 같은 손해를 인지하고도 경영권 박탈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화 계열사의 지지를 얻으려 배임행위를 저질렀다”며 주주대표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MBK 측은 한화그룹의 승계 문제를 거론했다. 당시 넘긴 지분이 한화그룹 승계에 있어 중요한 지분이었기 때문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요구하며 더욱 높은 가격에 (주)한화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었는데 이를 포기했다는 의미다.
한화그룹의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3세 경영인 승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다. 한화에너지 지분구조를 보면 김동관 부회장이 50% 지분을 가지고 있고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25%씩 가지고 있는 개인회사다.
결과적으로 한화에너지가 고려아연의 (주)한화 지분 7.25%를 매입해 지분율을 22.16%까지 끌어올리면서 3세 경영인 승계는 마무리 수순만 남았다. (주)한화의 최대주주는 지분 22.65%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 김승연 회장이지만,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주)한화 지분 5.43%를 가지고 있고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2.14%, 2.17%를 가지고 있어 사실상 3세 경영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다만 MBK 측이 제기한 배임혐의가 입증이 되면 (주)한화의 지분을 매입해 이득을 본 한화그룹 측도 곤란해질 수 있다. (주)한화 지분은 두 회사 간 협력 차원에서 이뤄진 거래로 발표됐는데, 최윤범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은 이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한화에너지의 (주)한화 지분 매입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으로 평가받는 당사자는 김동관 부회장이기도 하다. 김 부회장이 한화에너지 지분 단 1주만 확보하면 한화그룹 경영권을 손에 쥐게 된다(관련기사 한화그룹 승계 구도에 영향 미칠까…한화에너지, (주)한화 지분 매입 ‘주목’).
다만 MBK 측이 제기한 고려아연 경영진의 배임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MBK가 제기한 고려아연의 배임혐의는) 경영진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내용을 입증해야 하는데 상장사 주식을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을 기준으로 거래를 했기 때문에 고려아연 경영진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여기에 손해를 입히려는 의도까지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측은 MBK 측의 배임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회사 사정에 따라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면서 “주식 매각 시점에서 미래를 알 수 없는데 무슨 수로 배임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MBK 측이 이번 정기주주총회 전에 고려아연과 한화 측의 결집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주)한화 지분을 처분했지만 (주)한화는 지난 상반기 기준 고려아연 지분 1.14%를 가지고 있고 한화그룹 계열사 한화에이치투에너지(5%), 한화임팩트(1.88%) 등의 지분까지 더하면 한화그룹이 확보한 고려아연 총 지분은 8%를 넘는다.
현재 MBK 측 고려아연 지분율은 46.7%이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일가 우호지분과 격차가 6%포인트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의결권 대결에서는 MBK 측이 우위지만 이번 정기주총부터는 지난 1월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집중투표제를 통해 안건 표결을 해야 한다.
당시 임시주총에서도 한화그룹은 고려아연 측이 올린 집중투표제 도입안에 찬성을 하며 신뢰를 보냈다. MBK 관계자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은) (주)한화가 지난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의아하다”고 말했다. 향후 (주)한화 소수주주들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할 경우 반대할 명분이 사라져서다. 당시 고려아연 주주인 현대차그룹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집중투표제를 통해 안건을 처리하면 주주는 보유 주식 1주당 안건으로 올라온 이사 선임 후보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받아 자유롭게 집중투표를 할 수 있다. 10명의 이사 선임 안건이 오르면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생기는데 해당 의결권을 1명의 이사에게 몰아주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집중투표제를 실시하면 대주주보다는 소수주주에게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의결권이 적은 소수주주가 전략적으로 특정 이사 후보에 집중투표해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한화그룹이 고려아연 편에 서면 MBK 측은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도 이사회를 장악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최윤범 일가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엮이기 싫어하는 국민연금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영하고 있어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편에 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이라면서 “MBK의 홈플러스 논란으로 국민연금이 MBK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앞서의 MBK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진이 한화의 지분을 이해할 수 없는 가격에 넘겨 주주들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면서 “한화그룹과 고려아연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