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전 장관의 인기는 대선정국에 접어든 정치권에서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정통부장관과 지난해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던 그는 여전히 범여권의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현 정부 실세들과 일정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진 전 장관이 자신을 ‘재계의 스타’에서 ‘정·재계를 아우르는 블루칩’으로 만들어준 현 정권 하에서 뭔가 큰일을 내기 위한 속내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하이닉스 새 CEO 선정 과정에서 막판 후보사퇴로 시선을 끌었던 진대제 전 장관은 최근 동부그룹에 고문으로 영입되는 과정에서도 뉴스거리를 선사했다. 동부한농과 동부일렉트로닉스의 합병법인인 동부하이텍은 지난 5월 2일 오전 공식 출범식 직전 ‘진대제 전 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가 1시간 만에 ‘영입 조율 중’으로 정정했다.
결국 지난 5월 10일 동부가 공식적으로 진 전 장관 영입 사실을 다시 알리게 돼 일단락됐지만 이번 일은 진 전 장관의 행보를 둘러싸고 여러 뒷말을 남겼다. 동부 같은 대기업이 진 전 장관의 확답을 듣지도 않고서 일방적으로 고문 영입 사실을 발표한 것인지, 아니면 진 전 장관이 수락을 했다가 동부 측 발표 이후 마음이 잠시 흔들렸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동부 측은 “세부적인 조율 문제였다”고 밝혔다. 진 전 장관 측도 “윗분들 사이 이야기는 다 끝났으나 실무적인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전한다.
5월 2일 동부 측이 ‘진 전 장관의 고문직 수락’ 발표에 대해 정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나서 며칠 후 진 전 장관은 김병준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과 함께 공연관람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호사가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정통부장관을 지낸 진 전 장관이 노 대통령을 보좌해온 김병준 위원장과 만나는 장면은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진 전 장관 측도 “김병준 위원장과는 (진 전 장관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다.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동부 측의 고문 영입 발표 정정 해프닝이 일어난 직후에 두 사람의 회동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노 대통령 측근 중 한 사람인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두고 진 전 장관의 하이닉스행 불발과 연결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유력 후보였던 진대제 전 장관이 막판에 하이닉스행을 고사한 것을 두고 ‘진 전 장관과 하이닉스 양측이 대우 조건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결국 하이닉스의 새 CEO는 현 정부 하에서 특허청장과 산자부차관을 지낸 김종갑 신임 사장의 몫이 됐다.
올 하반기 매각 가능성이 타진되는 하이닉스는 현재 외환은행 우리은행 산업은행 신한은행 등으로 이뤄진 채권단이 주도하고 있지만 새 주인을 맞는 과정에 정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새 CEO 선임과정에서 진대제 전 장관이 유력후보에 올랐던 점이나 김종갑 신임 사장 선임 등의 과정을 두고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라 비아냥거리는 시선마저 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진 전 장관 측은 “(진 전 장관이) 하이닉스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운영 중인 투자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일을 택한 것 같다. 영입조건 관련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진 전 장관은) 더 이상 하이닉스에 미련이 없다”고 밝혔다. 진 전 장관은 지난해 IT기업 투자전문회사인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를 설립한 바 있다.
일각에선 진 전 장관이 한때 하이닉스 인수 가능성이 나돌았던 동부하이텍행을 택한 배경을 두고 ‘추후 주인이 바뀐 새 하이닉스에서 CEO를 맡기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 나돌기도 한다. 동부일렉트로닉스가 자금동원력을 갖춘 동부한농과 합병해 동부하이텍으로 거듭나면서 종합반도체회사로의 약진을 꿈꾸며 하이닉스 인수전에 올인할 가능성이 거론된 까닭에서다. 그러나 동부 측은 “하이닉스 인수전 참여는 내부에서 거론된 적도 없다”며 극구 손사래를 치고 있다. 진 전 장관 측도 “동부 측이 원할 때 자문을 해주는 비상근 고문직일 뿐”이라며 진 전 장관의 동부행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최근 일부 범여권 인사들이 진 전 장관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 퍼져 있다. 이는 다분히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다. 진 전 장관이 경남 의령(PK) 출신으로 PK 지역 유권자들의 여권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일정 부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 반도체 신화 주역으로서 이 전 시장의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 등이 큰 매력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대선 출마 등 정치권행에 대해 진 전 장관 측은 그동안 손사래를 쳐왔다. 진 전 장관 측도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러나 여의도 정가의 그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최근에도 ‘진 전 장관이 범여권 대선후보 출마에 대한 막판 저울질을 하고 있다’ ‘진 전 장관이 별도의 사무실을 꾸리고 있다’는 소문들이 퍼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진 전 장관 측은 “투자회사 운영에 필요한 기업분석 연구 등을 위해 지난 3월 한국경쟁력연구원을 만들어 현재도 IT 관련 인사 영입을 계속 해나가는 중인데 이것이 와전된 것 같다”고 밝힌다.
진 전 장관 측은 하이닉스나 정치권행에 대해 계속 고개를 가로젓고 있지만 진 전 장관 같은 인사가 단순히 투자회사 운영에만 전념할 것이라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현재 범여권의 대선후보 경선이나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작업은 올 8월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아온 진 전 장관의 시선은 이미 8월 이후를 향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