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 ||
공정위가 발표하는 재계 순위는 상호출자제한 등 규제를 위한 것이지만 청와대 오찬 등에선 자리 배치 기준이 되는 등 의전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회장님의 자존심 같은 것으로 그룹 직원들의 사기와도 직결된다. 특히 항공부문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경쟁하는 두 재벌 오너의 자존심엔 어떤 결과를 미쳤을지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경쟁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와 한진의 출발은 비슷했다. 한진은 고 조중훈 회장이 25세 때인 1945년 중고 트럭 1대를 밑천 삼아 인천에 운송회사 겸 무역회사인 한진상사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금호아시아나는 한진보다 1년 늦은 1946년 고 박인천 회장이 사업을 하기엔 좀 늦은 45세 때,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37년형 5인승 포드자동차 2대로 광주에서 택시회사를 차린 것이 모태다.
조양호 회장은 조중훈 회장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1949년생. 경복고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에서 공업경영학을 전공하고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80년 상무, 84년 전무, 89년 부사장, 92년 사장, 96년 그룹부회장에 오른다.
고 조중훈 회장은 자제들에게 경영수업을 착실히 시켰다. 네 형제 모두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지만 전공과 성격을 감안해 계열사를 맡겼다. 대한항공은 그룹 주력 업종인데다 전문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만큼 공대 출신인 조양호 회장 몫이 됐다. 2002년 조중훈 회장이 별세하자 생전에 마련해둔 후계구도대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됐다.
1945년생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고 박인천 회장의 5남 3녀 중 3남. 광주일고를 거쳐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한다. 타이어에서 상무까지 오른 박 회장은 73년 금호실업 전무, 80년 사장, 84년 금호 사장을 거쳐 91년 아시아나항공 사장, 2002년 부회장에 오른다.
90년대 초반까지 금호는 아시아나로 항공업에 진출했지만 단거리 노선인 동남아선이 고작이었다. 규모로 치면 다윗과 골리앗에 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DJ정부 들어서면서부터 대한항공의 시련이 시작됐다. 잇단 사고가 터지면서 그동안 독점해오던 대통령 전세기의 입찰제가 시작됐고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노선권 배분에서도 밀렸다. 이때 조 회장이 받은 스트레스는 상당해 보인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 2004년 중국 노선 배분과 관련해 박삼구 회장이 직접 나서 ‘후발사에 대한 정부의 배려’를 촉구하자 조 회장은 “항공사업은 기업이 능력껏 해야지 정부의 특혜를 기대해선 안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노선전쟁에서도 볼 수 있듯 금호아시아나와 한진의 역전을 놓고 두 오너의 스타일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후발업체이자 셋째인 박삼구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등 공격적 리더십을 지향했다. 노선을 따낼 때도 직접 나서 진두지휘해 최근엔 ‘소원’이던 파리노선까지 따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끝없는 확장경영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최근 대우건설을 6조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들이자 시장에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반면 항공업계 선두이자 장남인 조양호 회장은 보수적 수성 전략으로 평가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좇을 게 아니라 순간순간 남에게 지더라도 결국에는 이길 수 있는 장기적 구상과 안목을 갖추라”고 강조한 부친 조중훈 창업주의 영향도 있을 듯하다.
박삼구 조양호 두 항공업계 오너 간 전쟁의 분수령은 대한통운 인수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한통운의 자산규모는 1조 4000억 원대. 금호아시아나는 일찌감치 인수 참여 의사를 밝혔다. 대한통운이 박 회장의 손에 들어온다면 재계 순위는 물론 종합 물류 최강자 한진과 ‘제대로’ 한판 붙게 된다. 물론 한진도 이를 그냥 두고보지는 않을 것이다. 때맞춰 조양호 회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한다고도, 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말해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최근 주식시장이 초활황세를 타고 9만 원대이던 대한통운의 주가가 10만 원대로 올라서 어느 쪽이 가져가든 출혈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확장경영을 추구하는 박 회장의 품에 안긴다 해도 이미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상당한 부담을 지고 있는 금호아시아나 측에 무리가 갈 것이라는 우려가 따르고 있다. 한진이 가져간다고 쳐도 중복투자라는 점에서 최상의 선택은 아니다. 똑같이 운송회사로 출발해 30여 년을 앞섰던 한진을 잡겠다고 나선 박삼구 회장의 도박이 성공할지, 조양호 회장의 수성이 성공할지 두 회장의 대결은 계속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