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척시의회 규탄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지역주민들이 시의회의 결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시의회의 결정에 따라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데다 일부 지역주민들까지 반발하고 나서면서 삼척시가 걷잡을 수 없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반면 책임을 져야 할 삼척시나 삼척시의회는 결정만 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다. 발전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있는 삼척시의 혼탁 양상을 입체 추적했다.
정부의 ‘6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화력발전소 유치를 희망한 강원도 삼척시가 시간이 갈수록 복마전 양상을 띠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 23일 삼척시의회가 화력발전소 건설의향서를 제출한 5개 기업 중 3곳, 즉 동양파워, 동부발전삼척, 포스코에너지에 대해서만 동의안을 의결한 탓이 크다. 삼성물산과 STX에너지는 시의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 사업 추진에 급제동이 걸렸다.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자 선정을 위한 배점은 사업을 희망하는 해당 기업이 확보한 부지 적격성과 환경영향 평가 등을 합해 75점, 주민동의 15점, 삼척시와 삼척시의회 평가 10점으로 돼 있다. 따라서 삼성물산과 STX에너지는 삼척시의회에서 동의한 다른 3개 기업보다 10점이 깎인 채 출발하는 셈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삼성물산만의 강점을 살려 다른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충분히 뒤집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1~2점으로도 당락이 결정될 수 있는 마당에 10점이나 깎였다면 사실상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척시의회의 동의를 얻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탈락한 두 기업은 시의회의 결정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시의회에서 평가기준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재심의를 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STX 관계자는 “삼척시의회가 아무런 기준 없이 법적 절차를 무시해가면서 일부 기업에게만 유치에 동의해줬다”며 “삼척시의회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특정업체들에게만 동의를 해준 배경과 평가 기준을 분명히 밝히고, 부당하게 배제된 기업들에 대한 추가 동의를 통해 공평한 사업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삼성물산보다 STX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삼척시의회를 압박하는 수위가 더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기술력과 재무구조에서 앞서 있는 데다 역시 ‘6차 전력수급계획’의 후보지인 강릉에서 승부를 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물산 측은 “우리도 강력하게 이의제기를 하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재심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뿐 아니라 지역주민들까지 삼척시의회 결정에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안효용 삼척시의회규탄을위한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수석부위원장은 “시의회는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사업 유치에 대한 가부 결정만 하면 된다”며 “시의회가 무슨 권한으로, 그리고 어떤 평가기준으로 3개 기업의 동의안을 의결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업체 선정은 지식경제부가 할 일이지 삼척시의회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삼척시의회의 사업동의안 의결을 사실상 업체 선정 작업으로 규정했다.
일각에서는 비대위의 실체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대위가 어떤 경로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변하는지 모호하다는 것. 심지어 ‘특정 기업이 비대위를 매수해 시의회를 압박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다. 기업들 간 상호비방을 넘어 지역주민들까지 각종 의혹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 동양파워의 삼척화력발전소 조감도(왼쪽). 동양파워가 화력발전소 건설부지로 활용할 예정인 동양시멘트 46광구 현장. |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재심의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삼척시의회가 원칙도 없이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둘째 치고 사업동의안 의결을 받은 3개 기업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삼척시 역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삼척시 측은 “담당자가 해외출장 중”이라면서 “담당자 한 명 외엔 아무도 모른다”고 외면했다.
발전소 건설과 발전 사업은 대형 건설사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분야다. 재계 관계자들은 “발전소 건설 사업이 신성장동력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대해 “건설부터 시공, 운영까지 모두 할 수 있다”며 “일단 지은 후에는 정부에서 전기를 모두 사주기 때문에 원가와 마진이 보장되고 그만큼 안정적인 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도저히 손해를 볼 수 없는 사업구조라는 얘기다.
많게는 수조 원에 달하는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서도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건설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자금 조달도 쉬운 편”이라고 귀띔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에 마땅히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앞 다퉈 투자하겠다고 경쟁을 벌일 정도라는 것.
그렇다면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유난히 삼척시가 시끄러운 까닭은 무엇일까. 발전소 건설 등과 관련해 지역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삼척지역은 지자체와 주민들이 동의하고 나섰기에 기업들로서는 껄끄러운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은 한국전력공사(한전) 자회사들이 독점해왔다. 정부가 이를 민간사업자에 개방한 것은 지난 ‘5차 전력수급계획’ 때부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간 생산량 2000㎿급 석탄화력발전소를 하나 짓는 데 드는 비용은 3조 원가량이다. 날이 갈수록 전력은 부족해지기 마련이고 부족한 전력을 채우기 위해 발전소 건설은 불가피하다. 현재로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원자력발전소지만 원전에 대한 반발과 부작용이 극심한 상황이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인식이 원전보다 덜하지만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전이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짓기에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다. 한전 자회사와 민간 사업자들의 경쟁체제를 유도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민간에 개방한 이유 중 하나다. 동부발전의 ‘당진동부그린발전소’, STX에너지의 ‘동해화력발전소 프로젝트’가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민간 사업자에 개방한 첫 결과물이다. 하지만 당진이나 동해는 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사업이 순조롭지 않다.
기업들이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군침을 삼키는 이유는 또 있다. 발전 사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송전선로다. 다시 말해 발전소만 건설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송전선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가치가 있다. 송전선로 없는 발전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현재 영동지역에 4000㎿ 용량을 송전할 수 있는 선로가 확보돼 있다”며 “송전선로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 지금 당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즉 삼척과 강릉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6차 전력수급계획’ 이후에는 큰 규모의 발전소 건설 사업이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송·배전선로를 건설하는 문제는 발전소 건설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발전소는 일정 규모의 부지를 확보해 그곳에 지으면 되지만 송·배전선로는 산이나 들, 강, 논과 밭, 마을 등을 가릴 것 없이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설사 주민동의를 얻었다 해도 송전선로를 단기간에 건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이어서 일부 기업은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동양그룹의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동양시멘트, 동양매직을 매각하면서까지 화력발전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삼척 화력발전사업에 그룹의 힘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동양그룹의 경우 회사 비즈링(수신 대기시간 동안 나오는 안내)이 “동양만이 할 수 있는 삼척 친환경 화력발전소~”로 돼 있을 정도다. 삼척 화력발전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증거다. STX도 STX팬오션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현재 재무구조가 좋지 않다는 것. 지난 2009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바 있는 동양은 지금도 유동성 위기에 시달릴 정도며 STX는 지난 5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바 있다. 동부그룹 역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기업이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이들 기업이 사업 유치전에 뛰어들 수 있는 배경은 앞서 말한 발전소 건설에 대한 자금 조달의 용이성에 있다.
그렇지만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은 최종 선정 과정에서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동양과 STX 등 기업들이 알짜 회사를 매각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이는 화력발전사업 유치에 대한 희망을 강력하게 표명한 효과도 노린 것이다. 이들의 결단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오버’, ‘압박용’, ‘배수의 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원래 사업구조재편 방향을 그렇게 잡았던 것”이라며 “선정이 되면 그때 로드맵을 발표하려 한 것이 미리 알려졌다”고 말했다.
삼척시의회의 결정에 따라 3개 기업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모두 사업자로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발전소 건설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이 연간 2000㎿급 발전소 건설을 신청했기에 정해진 송전용량에 따라 강릉과 삼척을 합해 2개 업체 정도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강릉에서 모두 될 수도 있고 삼척에서 모두 될 수도 있으며 강릉과 삼척 각각 1곳씩 선정될 가능성도 있다. 최종 결정은 지식경제부에 달렸다. 당초 연내에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업이 지연된 데다 대통령선거가 맞물려 있어 내년으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업계에서는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틀이 잡힌 다음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의 입장 차이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면서 삼척지역은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다. 흑색선전과 비방이 난무하고 일부에서는 지역주민들 간 충돌도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삼척시의회의 동의를 받은 기업이나 받지 못한 기업이나 모두 삼척지역의 혼란스러움을 개탄하고 있다. 삼척시의회의 석연치 않은 결정이 더 큰 화를 불러왔다는 것을 기업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삼척시의회나 삼척시 측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삼척지역의 혼란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지식경제부도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경부가 주민동의와 삼척시·삼척시의회에 높은 배점을 해 혼란을 야기했음에도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최종적으로 업체만 선정하면 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참여를 희망하고 있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사업 유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일부 주민들까지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록 사업자가 선정되더라도 그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