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들 “배제될 바엔 제적을…”

변화는 25학번 신입생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이들은 의대 증원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수능을 치러 합격한 의대 증원 정책 수혜자다. 기존 의대생들보다 집단 결속력도 비교적 약한 편이다. “어떻게 들어온 학교인데 3월 교정 한 번 못 밟아보고 제적당해 고졸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면 증원 혜택을 받아 들어온 만큼 의사 집단에 더 큰 충성을 하라는 심리적 압박을 받기도 한다. 25학번 의대생 학부모 A 씨는 “자녀도 처음엔 수업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런데 선배들이 술 약속 등 신입생들과의 만남에서 암묵적으로 단일대오를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으로 안다”며 “아직 제대로 된 수업 한 번 듣지 못한 자녀가 ‘소수로 배제될 바에 차라리 제적을 당하겠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A 씨 자녀처럼 복귀를 희망하는 의대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실명이 드러나는 것과 족보 제공에서 배제되는 일이라고 했다. 특히 수강신청을 하려는 25학번 신입생들은 수업에 참여하는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하고 있었다. 단일대오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단체 생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의대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빨리 학교 등록을 했다는 이유로 이른바 감귤(수련병원이나 학교에 돌아간 전공의와 의대생을 일컫는 은어) 취급을 당하고 명단에 올라 고초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교육부가 지난해 3월부터 ‘의과대학 학생 보호·신고센터’를 운영 중이지만 따돌림 걱정에 신고는 꿈도 못 꾸는 현실이다.
일부 학교의 경우 수강신청 페이지에서 수강 과목을 클릭하면 수업자료와 함께 수강자 명단이 떴다. 마음만 먹으면 해당 수업을 누가 듣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난 2월 의사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학교 복귀를 희망하는 연세대 의대생 약 50명의 실명이 담긴 명단이 공유돼 경찰이 내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사정을 잘 아는 의대생과 학부모들은 “연세대 블랙리스트도 이런 경로로 작성됐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족보 공유 못 받으면 피해 막심”

족보 만드는 방법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유형은 크게 선족(선배 족보)과 필족(필기 족보), 문족(문제 족보) 3가지로 나뉜다. 선족은 선배들의 필기 내용을 모은 것으로 주로 후배들의 예습용으로 쓰인다. 필족은 필기 족보의 준말이다. 그날 수업에서 교수가 한 강의 내용을 모두 받아적고 진도에 해당하는 기출 3~4년 치 문제와 해설을 첨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부 학생들이 ‘족원’으로 차출되고 이렇게 모은 족보는 모두가 공유하는 홈페이지나 카페에 올라간다. 일정 수준으로 족보가 쌓이면 해당 과목의 반장인 ‘족장’이 자료를 책으로 제본해 나눠주는 식이다.
족보 모으기는 시험 기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각자 범위를 정해 문제를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족장에게 문제를 복기하는 식으로 문제 족보를 만들어 나간다. 학교 중간·기말고사 문제는 이 10년 치 족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족보 관리는 의대 학생회 혹은 동아리 지도부에서 한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단일대오를 강조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배신자로 낙인찍히면 족보를 제공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신입생들 불안감이 마냥 기우는 아닌 것이다. 대학 소속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는 학과 특성상 이후 취업 활동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족보는 의사 면허 취득 여부로도 연결된다. 이른바 선발대라고 불리는 성적 우수자들이 의사 국가시험을 먼저 치르고 후발대 학생들에게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알려주는 일은 엄연한 부정행위지만 그간 의대생 사이에선 관행처럼 내려왔다.

서울 소재 의대에 다니는 한 본과생은 “족보 없이 시험을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족보를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크다. 만약 여기서 배제되면 학교생활 내내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편 각 대학의 비상대책위원회 및 의대생 전담팀(TF)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등록’ 단일대오는 무너졌지만 ‘수업 거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본과생들 중에도 “학교 압박에 못 이겨 일단 등록은 했으나 추후 휴학계를 내거나 수업 거부를 이어가겠다”는 인원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연세대를 비롯한 일부 학교에선 재휴학 상담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업에 출석하는 비율도 낮았다. 4월 2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은 15개 의대 재학생 6571명 중 실제 수업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 예정인 학생은 3.87%(254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수강률이 가장 낮은 학교는 가천대로, 의대협 소속 학생 245명 중 1명(0.41%)만이 수업에 복귀했다. 가장 수강률이 높은 울산대마저 9.49%에 그쳤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