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는 정몽구 회장. | ||
항소심 결과와 상관없이 대법원까지 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항소심 결과를 눈여겨 보지 않을 수도 없다. 대법원 판결은 그 특성상 범죄사실에 대한 새로운 평가보다는 항소심 판결의 법리 확인에 무게를 두기 마련이다. 따라서 항소심 선고공판이 피고인 정 회장이나 원고인 검찰 양측에 이번 재판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정몽구 회장은 법정구속을 면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1심 당시 집행유예 수준의 선고를 기대했던 현대차 변호인단으로선 이번 항소심에서 어떻게든 집행유예나 그 이하의 선고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반면 지난해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최대 성과물로 자평했던 검찰 역시 항소심 결과에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현대차 항소심 과정을 바라보는 법조계와 재계 그리고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선 ‘1심보다는 희망적이다’는 의견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4월 구속수감에 이어 올 2월 1심 실형선고에 고개를 숙였던 정 회장이 과연 이번 항소심 선고 법정에선 미소를 머금을 수 있을까.
우선 정 회장 항소심 결심공판이 연기된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것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추가 석명을 요구하며 당초 6월 5일로 예정돼 있던 결심공판을 2주 연기했다. 정 회장과 검찰 양측에 ‘비자금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재판부의 추가 석명 요구가 에버랜드 사건 항소심 장기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던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에버랜드 건처럼 장기화 될 가능성은 없지만 이번 공판 연기를 통해 정 회장에 대한 항소심 최종결과가 드러나는 선고공판은 7월 중에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현대차 기아차를 상대로 진행 중인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7월 중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지난 3월 23일 글로비스 현대오토넷 엠코 위아 등 현대차그룹 4개 계열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4월 초부터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것이 5월 31일이 돼서야 언론에 공개됐다.
이번 세무조사까지 끝나고 나면 현대차는 비자금 사태로 촉발된 회사 차원의 조사는 다 받는 셈이다. 정 회장 개인에 대한 법원 판결만 남는 셈이다. 항소심 선고와 현대차 세무조사가 7월 중 비슷한 시점에 마무리될 것이란 관측은 호사가들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현대차 기아차에 대한 세무조사가 나중에서야 공개된 점이나 정 회장에 대한 공판일정이 연기된 점 등이 어우러져 묘한 해석을 낳기도 한다. 항소심 마무리 전에 ‘다 털어버리겠다’는 공감대가 청와대-국세청-법원-현대차 간에 이뤄졌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세청이 이번 현대차 세무조사에 대해 교감을 이루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청와대-국세청 핵심인사들의 친분을 들먹이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7·3 개각 당시 강원도 삼척 출신의 전군표 국세청장이 등용됐을 때 정·관계엔 ‘전 청장이 이광재 의원과 가깝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은 전 청장과 같은 강원도 출신(평창)으로 두 사람은 2002년 대선 직후 전 청장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전문위원으로 발탁되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 청장은 국세청 국장과 차장을 거쳐 지난해 국세청장직에 오르는 승진가도를 달렸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만약 정부가 현대차와 정 회장에 호의적이라면 이번 세무조사에서 정 회장에 대한 추가 혐의가 적발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서 나돌고 있다.
얼마 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정 회장은 직접 식사 대접을 하며 2010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지원을 역설한 바 있다. 세계박람회 유치는 지난해 말 청와대 회동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4대 재벌 총수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사안으로 임기 말을 맞이한 현 정부가 정성을 들이는 이벤트 중 하나다.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정 회장의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활동은 항소심 판결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와 법원을 상대로 한 긍정적 여론형성 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최근 불거진 기아차 위기설 또한 정 회장 재판결과의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영업실적이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기아차 상황에 대해 정부가 잔뜩 신경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해 재계 인사들은 ‘현대차가 항소심에서 1심보다 낮은 형량을 조심스레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현대차 측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법정에 섰던 재벌총수들 중 정 회장이 가장 불운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까닭에서다. 회삿돈 횡령과 형제간 다툼으로 볼성 사나운 광경을 연출한 두산 박용성-박용만 형제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나서 올 초 특별 사면을 받았다. 삼성에버랜드 사건 항소심은 결국 검찰 공소사실의 10분의 1만 유죄 판결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지난해 설이 무성했던 이건희 회장 소환 논의는 아예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구속수감까지 겪은 정몽구 회장과의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 안팎을 드나드는 인사들 사이에 ‘재판부의 현대차를 향한 정서가 나쁘지 않다’는 말이 나도는 것에 귀 기울여봄 직하다. 정 회장 담당 재판부가 주수도 회장 관련 JU 사건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정 회장 판결에 골머리를 앓느라 정작 국민적 지탄을 받아온 JU 사건에 목매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서 법조계 인사들은 ‘재판부가 골치 아픈 정 회장 건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통해 일찌감치 털고 지나가려 할 것’이라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조계 일각엔 ‘정몽구가 주수도 덕 볼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등장했다고 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