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세탁기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LG전자 트롬 세탁기와 모델. LG전자는 최근 몇 년간 경쟁사와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다. | ||
대기업 간에 특허 소송이 걸리게 되면 최소 수억 원 이상의 거금이 걸린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기업들은 정작 돈보다는 명예 쪽에 더 관심을 쏟는다. 특허 소송에서 질 경우 자신들의 제품은 하루아침에 상대기업의 ‘짝퉁’처럼 이미지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송에서 이긴 쪽은 기술력의 우위를 공인받은 것처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LG전자의 대표상품 중 하나인 ‘트롬’ 세탁기가 그런 경우다.
LG전자는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는 삼성, 대우와 해외에서는 월풀, 메이택 등 세계적인 가전업체들과 세탁기 특허를 놓고 해마다 법정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그중 지난달 20일 판결이 내려진 대우일렉트로닉스와의 특허소송은 그동안 LG전자가 벌여온 세탁기 소송 중 상대 업체에 입힌 상처가 가장 큰 사건으로 평가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지난 6월 20일 LG전자가 대우일렉트로닉스의 클라쎄 세탁기를 상대로 “LG전자의 트롬 세탁기에 사용된 모터 관련 기술특허를 침해했다”며 낸 특허침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LG전자가 클라쎄에 쓰였다고 주장하는 자신의 4개 특허기술 중 하나인 ‘직결식 모터 관련 기술’이 특허발명으로 인정되는데 이 기술이 클라쎄에 그대로 적용돼 특허권이 침해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LG 측과 경쟁관계에 있는 대우가 클라쎄를 계속 제조 및 판매할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LG 측의 피해가 예상돼 가처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직결식 모터 기술은 드럼 세탁기의 드럼 측면에 모터를 단단하게 결합시켜 세탁기의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기술이다.
이로 인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LG 측이 문제 삼은 기술을 적용한 클라쎄 18개 모델을 생산하거나 팔 수 없게 됐다. 여기에다 대리점 및 창고 등에 보관된 해당 모델의 완성품과 반제품들에 대해서도 점유권을 상실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쉽게 말해 대우는 특허권과 관련한 본안 소송의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클라세 세탁기를 만들 수도, 팔 수도 없게 됐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LG전자의 특허가 이미 업계에서 공용화된 기술이기 때문에 특허무효 사유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또 LG전자를 상대로 이미 특허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며 7월 말경에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일렉은 아울러 LG전자가 유사한 소송을 삼성전자 납품회사에도 제기한 적이 있지만 기각됐던 사례를 들어 LG전자의 특허소송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대우일렉 측은 “LG전자는 2005년에도 똑같은 기술로 삼성전자 하청업체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며 “한번 졌던 싸움을 왜 또 시작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실제로 2005년 6월 LG전자는 삼성전자의 납품업체인 뉴모텍을 상대로 ‘드럼세탁기 부품 관련 특허권 침해’ 소송을 냈지만 기각판결을 받았다.
당시 LG전자는 “삼성 ‘하우젠’ 드럼세탁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이 드럼세탁기용 직결식 모터(DDM) 특허를 침해했다”며 “해당 모터를 생산·양도해서는 안되며 창고 등에 보관 중인 모터를 모두 폐기하라”고 요구했었다. 또 LG전자는 당시 특허침해금지가처분과 동시에 5억 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냈지만 법원은 LG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의 재판부도 이번 대우와의 소송에서 판결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 50부였다. 물론 판사구성은 달라졌지만 재판부는 당시 “LG전자의 직결식모터 제조기술은 공공연하게 활용되던 기술로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LG전자의 소송을 기각했다.
하지만 LG전자는 강경한 입장이다. LG전자 측은 “당시의 소송은 특허 대상이 직결식 모터였고 이번에는 모터와 드럼을 연결시키는 구조”라며 “전혀 다른 소송”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 측은 또 “대우일렉이 이 특허를 도용한 제품을 해외에서 트롬 세탁기보다 30% 이상 싼 값에 파는 바람에 피해가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LG전자는 1999년 이 특허를 적용한 직결식 모터를 장착한 트롬을 개발해 2003년 시장점유율 72%를 기록하는 등 지속적으로 판매를 확대해 왔지만 현재는 시장 점유율이 50%대로 줄어든 상태다. 현재 국내 드럼 세탁기 시장은 LG가 51%, 삼성이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시장점유율은 10%선에 머물고 있다.
이에 관해 재계 일각에서는 LG전자의 소송 전쟁이 해외업체들의 소송공세로 인해 곤욕을 치러야했던 자신들의 경험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LG전자는 2003년 11월 미국 3위의 가전업체였던 메이택으로부터 세탁기에 쓰이는 일부 부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당한 바 있다. 당시 메이택은 LG전자의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었다.
또 세계적인 가전업체인 월풀과 소송대전을 벌이기도 했다. 2004년 월풀은 미시간주 서부지구 법원에 LG전자와 LG전자USA가 2건의 세탁기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잇달아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2004년 5월 “월풀의 세탁기인 ‘칼립소’와 ‘듀엣’ 모델이 LG전자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과 특허권 사용 중지를 요구하는 맞소송을 내는 강수로 맞섰다. 당시 LG전자는 탈수 전에 세탁물의 불균형을 감지하는 방법에 관한 특허와 세탁물의 엉킴이 생겼을 경우 엉킴을 풀어주는 방법에 관한 특허, 옷감이 끼는 것을 방지하는 구조에 관한 특허 등 총 3건의 특허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2년간 이어진 소송대전에서 LG는 ‘골리앗’ 월풀을 잡는 개가를 올렸다. 2006년 6월 미국 미시간주 서부지구 연방법원이 LG전자 세탁기는 월풀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린 것. 이 판결을 계기로 LG전자는 미국에서의 세탁기 소송전쟁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기쁨을 맛봤다.
이런 소송들에 관해 LG전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의 가전시장은 신뢰와 투명성이 중요해 특허소송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며 “반대로 특허소송에서 이길 경우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이를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