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서 관리직 승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 기업의 경영자는 “관리직 승진을 제안했지만, 해당 사원이 이를 고사했다”며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실감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거부감에 그치지 않고, 기업 문화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NHK는 최근 보도를 통해 “일본 기업의 중간관리자는 위로는 경영진의 압박을, 아래로부터는 직원들의 불만을 동시에 받아 고충이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와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가 맞물리면서 관리직을 꺼리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젊은 세대는 일보다 삶의 질과 정신적 여유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승진할 경우 개인 시간이 줄어드는 반면, 책임과 업무량은 급증한다는 점에서 관리직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의료용품 렌털 대기업에 근무하는 마쓰나미 유지로 씨는 “영업소장으로 승진한 뒤 관리직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업 실적 목표 달성을 위해 매일 부하 직원 개개인의 진척 상황을 점검해야 하고, 동시에 직접 현장에 나가 영업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쓰나미 씨가 관리하는 직원은 총 21명으로,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업무 스타일과 경력도 제각각이라 매니지먼트의 난이도는 높다. 그는 “가장 큰 고민은 다양한 부하 직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는 점”이라며 “최근에는 직원들의 정신건강까지 챙겨야 해 부담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일본 내 일부 기업들은 중간관리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인공지능(AI) 지원 시스템과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상사 대행’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마쓰나미 씨의 회사도 지난 4월부터 이른바 ‘AI 상사’라 불리는 시스템을 현장에 적용했다.
이 시스템은 이메일, 회의록 등 다양한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업무 과중 여부를 판단하고, 관리자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또한, 부하 직원의 발언 내용이나 근무 패턴을 기반으로 동기부여 수준과 스트레스 지수를 예측해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직원들의 정신건강 상태까지 분석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 빈도가 줄거나 휴가 사용이 급증하는 경우 시스템은 퇴사 가능성을 사전에 감지해 관리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식이다. 마쓰나미 씨는 “부하 직원이 많아 일일이 살피기 어려운 부분을 AI가 보완해줘 인력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외부 전문가가 일정 기간 상사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상사 대행’ 서비스도 주목받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프로젝트 진행과 팀 리더 역할, 부하 직원에 대한 멘토링 등 실제 관리직의 업무를 외부 인력이 맡는 방식이다. 단순한 업무 분담을 넘어, 조직에 새로운 시각과 유연한 리더십을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서비스를 수행 중인 야스이 아유무 씨는 IT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팀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한 마케팅 회사를 담당하고 있다. 회사의 직원 수는 총 130명이며, 야스이 씨는 이 중 28세의 젊은 관리직인 나카쓰카사 가즈키 씨를 지원한다. 부하 직원 14명의 육성과 팀 운영을 야스이 씨가 대신 맡아 실질적인 ‘상사 역할’을 수행 중이다.

NHK에 따르면 “상사 대행 서비스는 2022년 일본에 처음 등장한 이후 2024년 150개 이상의 기업이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인력 부족, 관리자 기피 현상에 따른 대응 방안으로 빠르게 확산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서비스의 확장과 비례해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한계점도 지적되고 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의 모호성이다. 외부 전문가가 상사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도 권한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과가 나쁠 경우 책임 소재가 애매해지고, 반대로 성공했을 때도 내부 구성원이 아닌 외부 인력이 그 공을 가져간다는 인식이 형성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신뢰 형성의 어려움도 걸림돌이다.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단기간 파견된 외부 상사에게 진심을 털어놓기 어렵고, 이는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단절이나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욱이 일본 특유의 서열 중심 문화와 장기근속을 전제로 한 관계 중심 조직에서는 외부 상사의 조언이나 개입이 ‘낯선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 인사 컨설턴트는 “외부 전문가가 일시적으로 관리자의 역할을 맡는 것이 당장은 효과적일 수 있으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지속성과 효과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외부 인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내부 관리자 양성과 책임 구조 정비 등 조직 내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관리자가 없는 자율 조직’ 구축에 나서고 있다. 가령 IT기업 ‘산산산’은 관리자 없이 모든 직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협업하는 구조를 도입했다. 성과 평가는 동료 간 피드백과 투명한 회의를 통해 이뤄지며, 수평적 소통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조직 문화를 실험 중이다. 이를 두고 NHK는 “관리직 기피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일본 기업 문화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과 자기주도적 운영이 확산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