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소송전으로 번졌고 2024년 10월 법원은 류 씨 손을 들어줬다. 양측 모두 과실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충돌로 인해 류 씨가 10급 장애를 입은 부분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나이가 더 많고 여성인 류 씨가 더 약자”라고 설명했다. 조정을 통해 류 씨는 왕 씨로부터 7만 위안(1390만 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이 사건과 법원 결정이 뒤늦게 알려지게 된 것은 5월 8일 칭다오 법원이 주요 판결을 소개하면서였다.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엔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고, 언론과 주요 포털 사이트를 달궜다. 법원 판결을 꼬집는 의견들이 주를 이뤘다.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 영상이 퍼지면서 법원을 향한 비판은 더욱 확산됐다. 이에 따르면 뒤에 있던 왕 씨는 류 씨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류 씨는 앞을 보지 않고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다는 류 씨의 주장과 법원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본적인 사실조차 틀린 것이 있었다. 왕 씨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베이징의 한 변호사는 “류 씨가 여성이라서 더 배려했다는 법원의 판결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서 “재판부가 과연 사건 기록을 제대로 읽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 사례에 유독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진 이유는 보행자간 충돌이 지난 10여 년간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과 부딪혔을 때의 책임 소재 공방은 비일비재했다. 한 누리꾼은 “법원이 과실 여부보다는 노인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고의로 부딪힌 후 돈을 뜯어내는 일이 많아졌다”고 주장했다.
우한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는 왕 아무개 씨는 “그동안 법원은 안전거리를 언급해왔는데, 이는 도로교통안전법상 차량에 적용되는 것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게 합리적인 것인지, 또 보행자의 안전거리에 대한 기준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면서 “주먹구구식 판결로 법원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고 꼬집었다.
SNS에서도 판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이 주를 이룬다. 한 교통사고 전문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앞에 가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설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느냐. 자동차라면 뒤따라오던 차가 더 잘못이 크긴 하다. 하지만 길거리는 차로와 다르다. 돌아선 사람이 우선적으로 과실이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도 노인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왕 아무개 변호사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끼리 부딪혀서 부상이 발생하는 일은 종종 벌어진다. 법률기관이 이러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 어떠한 기준을 갖고 있는지 중요한 이유”라면서 “대중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고 있다면 재판부도 한번쯤은 되짚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2006년 이른바 ‘펑위 사건’이 대표적이다. 난징에서 살고 있던 20대 청년 펑위는 길을 가다 옆에 있던 노인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노인이 다쳤고, 법원은 펑위에게 의료비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펑위는 “노인이 비틀거려서 부축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추후 이날의 영상이 공개됐고, 펑위의 말이 거짓으로 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나왔다. 영상엔 혼자 서 있던 노인이 옆으로 비틀거리자 뒤에 있던 펑위가 노인을 받쳐주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2019년 베이징에선 한 노인이 청년과 충돌해 뇌출혈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원은 청년에게 62만 위안(1억 30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청년은 “노인이 갑자기 역주행을 했다”고 변호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너무 지나친 판결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이런 사례들이 계속되자 청년들 사이에선 “노인을 부축하지 말자” “여성이나 노인이 있을 땐 멀리 떨어져서 걷자” 등과 같은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앞서의 왕 변호사는 “노인을 부축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쟁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면서 “법원의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세대 간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칭다오시 인민법원은 성명을 통해 “보행자 간 충돌 사건과 관련, 사실 설명이 부정확하고 법률 표현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법원이 과거 판결에 잘못이 있었다며 사과의 뜻을 표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 역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론과 인터넷 등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폐쇄적이던 법원이 여론에 귀를 기울였다는 이유에서다. 한 누리꾼은 “판사들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글을 올려 많은 호응을 얻었다. 왕 변호사도 “판사들이 여론에 휘말려서는 안 되겠지만 결국 법도 사회적 감정과 합의를 이뤄야 하고, 시대와 같이 걸어가야 한다”면서 “이번 법원의 사과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