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중 진담 김태균은 ‘취중 인터뷰’에서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속내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굉장히 드라마틱한 시즌을 보낸 것 같은데….
▲얼마 전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불우이웃 성금을 많이 냈다고 ‘사랑의 열매상’을 주더라. 물론 의미있는 수상이었지만 선수다 보니 성적과 관련된 상을 받고 싶었는데 봉사로 상을 받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시즌 중반까지 굉장히 좋은 성적을 냈고 4관왕(타율, 최다안타, 출루율, 장타율) 후보로 까지 거론되며 열심히 달렸는데 부상이 계속 되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거의 정신줄을 놔버렸다. 결국엔 2관왕(타율, 출루율)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때 좀 더 잘해둘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시 돌아온 한화는 이전과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지난 2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의 인터뷰 때 코칭스태프부터 선수들까지 모두 바뀌어서 적응하기 힘들다고 얘기한 게 기억난다.
▲그런데 시즌 중에 한대화 감독님이 그만두시고 시즌 후엔 김응용 감독님이 오시면서 코칭스태프가 또 바뀌었다. 그런 점에선 내년 스프링캠프 때도 또 적응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일본 지바롯데와의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마음 편히 야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 와서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개인 성적이 좋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일본 가기 전에는 한화가 꼴찌였어도 처음부터 꼴찌가 아니라 시즌 중반 넘어가면서 점차 하향곡선을 그렸는데 올 시즌엔 아예 처음부터 꼴찌였으니까 밥맛을 잃을 정도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있었지만 2년 새 내가 팀 고참이 돼버렸다. 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말 그랬을 것 같다. 김태균, 박찬호의 복귀와 영입으로 한화는 시즌 전까지만 해도 4강을 넘어 우승 후보로 지목됐으니까 말이다.
▲야구는 개인이 강해야 팀으로 모였을 때 더 강팀이 된다. 그런데 우린 선수 개인이 약했다. 팀의 기둥 역할을 해줘야 할 고참들이 모두 은퇴하고 없는 탓에 가지들만 남아 중심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거린 셈이다.
―아무래도 시즌 막판에 한대화 감독이 물러나고 감독대행 체제로 가는 부분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 류현진(왼쪽)과 김태균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시즌 마친 후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감독님께 정말 죄송했다. 모든 게 선수들 책임인 것 같아서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나 혼자 아등바등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몇날 며칠을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고민해봤자 도움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그런 생각들이 4관왕에서 2관왕으로 끝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김응용 감독이 새로 오셨다. 그런데 선수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김태균 선수한테 ‘살 좀 빼라’고 말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나도 기사 보고 처음 알았다. 감독님이 기자들한테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적으로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어? 살이 많이 빠졌네’라고 하셨고, 그 얘기에 선수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어떻게 형한테 살 빠졌다는 말씀을 하시느냐고. 말이 되느냐’면서 말이다. 난 누가 하라면 안 한다. 내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프로 선수가 몸 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만약 감독님이 나한테 살 빼라고 말씀하셨다면 난 오히려 더 체중을 더 늘렸을지도 모른다(웃음). 난 프로선수다. 프로답지 못한 자기관리는 결국 자신이 피해자다. 살 많이 뺀다고 다 우승하는 건 아니지 않나.
―김태균과 별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같다. 운동선수들 중 최다 별명 소유자 아닌가. 약 500개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처음엔 내 별명을 보고 재미있어서 많이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겹다 못해 화가 난다. ‘김’이라는 성씨 뒤에 아무 거나 붙이면 다 별명이 된다. ‘김질주’나 ‘김국민’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김도망’ ‘김고자’ ‘김사망’이란 별명에선 질려버렸다. 살아있는 선수한테 어떻게 ‘사망’이란 별명을 갖다 붙일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나한테는 왜 ‘바람의 아들’이나 ‘스나이퍼’ ‘라이언킹’ 같은 별명을 안 지어주나. 나도 근사한 별명을 갖고 싶다. 이 자리에서 부탁드린다. 내년 시즌에는 ‘김 시리즈’ 별명 말고 내 야구 스타일에 어울리는 근사한 별명을 지어달라. ‘김주장’ ‘김두목’은 절대 사절이다.
―‘영혼의 콤비’로 불렸던 류현진이 LA다저스에 입단했다. 누구보다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는 빨리 돌아와서 같이 우승을 일구자고 했던 놈이 내가 오니까 자기가 도망가 버렸다. 배신감도 들지만 어쩌겠나. 구단에 돈 많이 벌어주고 떠났으니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웃음). 미국 가기 전에 영어 좀 배우고 가라고 잔소리 해댔는데 여전히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통역이 있으면 불편함이 없겠지만 항상 통역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중엔 미안해진다. 나 같은 경우엔 통역한테 미안해서 혼자 다니다가 아예 선수들과의 소통마저 끊겼다. 그래도 현진이는 워낙 붙임성이 좋아서 잘 적응할 것이다.
―김태균한테 박찬호 선수는 어떤 존재였나.
▲ 대기 타석에 서 있는 최진행과 김태균. |
―선수 생활하면서 이승엽 선수를 신경 쓰거나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있나.
▲어떻게 감히 승엽이 형 이름에 날 갖다 댈 수 있겠나. 라이벌? 승엽 형이랑? 말도 안 된다. 스물다섯 살 이전까지만 해도 인터뷰 때마다 승엽 형의 기록을 뛰어 넘겠다고 호기 있게 얘기했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서 형은 내가 뛰어넘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주 큰 산이었고, 신 같은 존재다. 특히 일본에서 생활하며 승엽 형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난 1년 반 하고 힘들다며 도망쳐왔고, 형은 거기서 8년을 버티셨다. 성적이 어떠했든 나랑은 ‘멘탈’ 자체가 다르다. 한마디로 급이 다른 분이다.
―이대호랑 추신수랑은 동갑내기이자 고교야구 때 라이벌 관계였다. 지금은 두 선수가 해외파로 활약하고 있는데 솔직히 추신수하고는 그리 친하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친해질 틈이 없었다. 그러나 나한테 큰 자극을 주는 선수다. 친구지만 멋있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대호랑 한국에서 뛸 때 내가 잘하면 대호가 못하고 대호가 잘하면 내가 못 치고 그랬다. 그랬던 친구가 지금 일본에서 뛰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내가 경험해봤기 때문에 대호가 올 시즌 일본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데 잘 버티더라. 내가 예민한 성격인데 반해 대호는 털털하고 친근감 있는 성격이라 적응이 잘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대호가 너무 잘해서 내가 더 욕을 먹는 것 같다(웃음).
―유명한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의 아내(김석류 씨)와 결혼하면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부부 사이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내가 유명 아나운서 출신이라 사람들의 질투어린 시선이 꽤 컸었다.
▲사회 생활 열심히 하고 있는 아내를 ‘악의 구렁텅이’로 끌고 와서 커다란 짐만 안겨주었다. 나 하나 보고 일본까지 왔는데 임신 중에 지진의 악몽을 겪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고생만 했다. 또 나랑 결혼한다고 하니까 어찌나 욕들을 많이 하시든지. 돈을 많이 버는 선수와 결혼한다고 해서 왜 그게 비난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우리 둘은 행복했지만 나로 인해 아내가 더욱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아이 키우며 줄곧 혼자 지냈다. 나야 좋아하는 야구한다고 바쁘게 살았지만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만 살아야 했던 것이다. 아내의 주량이 맥주 한 잔이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혼자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 먹었다. 내가 나쁜 놈이다. 그래도 이제 돌 지난 효린이 보면서 서로 위안을 많이 얻는다. 세상에서 우리 딸처럼 예쁜 아기는 처음 봤다(폭소).
분위기가 ‘취중토크’라서 그런지 김태균은 평소 야구장에서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기자가 알아서 가려 써야 할 정도로 속마음을 꺼내보였다. 그런 그가 인터뷰 말미에 조심스럽게 해외진출에 대해 이런 말을 던졌다.
“한화가 좋은 성적을 내면 나도 현진이 따라서 미국에 갈까 봐요.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데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다시 일본으로 가고 싶진 않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아직 구체적이진 않고, 제 마음이 그렇다는 거죠.”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