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방은 지난 3월 김각중 명예회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공식적인 ‘3세 경영체제’를 선언했다. 경방의 경영권은 김 회장의 장남인 김준 경방 사장이 물려받았다. 물론 경방은 1925년생인 김 명예회장의 나이를 감안해 수년 전부터 사실상 경영승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김준 체제가 출범한 지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10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개인 최대주주가 장남인 김준 사장에서 차남인 김담 부사장으로 바뀐 것. 지분 격차는 13.42% 대 20.95%.
두 사람은 2006년 초부터 김준 사장이 11.19%를, 동생 김담 부사장이 11.15%를 갖는 근소한 지분율 차이를 약속이나 한 듯 지켜왔다. 그것도 김담 부사장이 지난해 초 1만 주가량을 매입해 지분율이 11.08%에서 지금의 11.15%로 약간 높아지기 전까지의 시기를 포함해 얘기한다면 적어도 3년 이상 동생은 형의 몫인 최대주주 자리를 넘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셈이다.
경방 측은 이번 지분변동이 “경영권 안정과 적대적 M&A에 대비하기 위한 주주 간 내부 매매의 결과이며, 다만 김 부사장의 경우 올 초 우리홈쇼핑 매각 차익을 거둬 자금 여력이 있어 지분을 더 많이 매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의문이 남는다. 현재 경방의 주주 구성은 김 명예회장 일가가 무려 46.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지분 변동이 있기 전 상황을 살펴봐도 김 명예회장의 직계 가족만으로도 33%에 달하는 높은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었다.
범 우호 지분이라고 볼 수 있는 동아일보와 삼양사까지 합하면 지분율은 더 높아진다. 이번 지분 변동이 일어나기 전 경방의 주주 구성을 보면 김 명예회장 일가 외에 동아일보가 32.51%, 삼양사가 11.8% 등 3대 주주군이 무려 77.76%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었다.
주식시장에서 대주주 측 지분을 제외한 모든 주식을 다 사들인다 해도 경방 측의 말대로 M&A 위협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셈이다.
그렇다면 경방 측은 왜 경영권 안정과 M&A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을까. 재계에서는 “경방 측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뒤집어보면 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즉, 우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세 집단의 주주들 중 두 곳이 힘을 합치면 나머지 하나를 상대로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M&A를 시도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경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번 김담 부사장의 지분 매입 이전에 발생한 또 다른 지분 변동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지분 변동의 핵심은 동아일보 김병건 꿈나무재단 이사장 등이 지난 6월 19일 보유지분 32.54% 가운데 16.12%를 김준·김담 형제에게 각각 423억 원에 매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이전 김 이사장은 자녀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지분 증여를 한다.
김 이사장은 지난 95년 경방 이사에 취임해 지난 2003년까지 이사직을 맡았으며 경방의 5대 주주였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7일자로 첫째 아들과 동생, 처제, 며느리 등에게 경방 주식 9만 9500주(4.78%)를 증여했다. 시가로는 130억 원 규모였다.
▲ 김준 사장(왼쪽), 김담 부사장 | ||
꾸준히 자신 소유 경방 주식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있던 김 이사장은 그러나 지난 연말에 주기로 했던 주식을 불과 3개월여가 지난 시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없던 일로 되돌렸다. 동아일보 가문이 후손들에게 상속하겠다고 공시까지 냈던 일을 갑작스럽게 취소한 것이다.
게다가 김 이사장은 보유지분을 자손들에게 나눠주는 대신 경방 측에 돈을 받고 팔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 부사장은 우리홈쇼핑 지분 6.48%를 매각한 자금을 바탕으로 김 이사장이 매각한 지분의 83%를 사들인다.
물론 이런 과정들은 회사 측이나 대주주들의 내부 사정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예들 들어 동아일보 가문이 내부사정으로 인해 포기한 지분을 김준ㆍ김담 형제가 단순히 사들인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회사 측 말대로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외부세력이 기존 주주와의 연대를 통해 경방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한 사전적 대응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주식시장에서는 경방의 3대주주인 삼양사가 경방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은 지난해부터 심심치 않게 돌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지분변동이 김준·김담 형제가 동아일보 측 지분을 이용해 향후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지분경쟁을 벌인 결과였을 경우다. 일각에선 벌써 섣부르게 ‘형제의 난’ 가능성에 대한 시나리오도 입에 올리고 있다.
게다가 주식시장이 유례없는 활황을 맞고 있는 요즘 인수합병과 관련된 소문은 더할 나위 없는 호재가 되고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가 M&A 위협에 노출됐다”는 소문이 나면서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이 상장 후 처음으로 상한가를 기록할 정도다.
경방의 주가는 대주주 지분율이 매우 높은 데도 한번 뛰어오르면 용수철처럼 급등하는 모양을 보여왔다. 지난 2005년 하반기 3만 원대이던 주식이 5만 원대로 뛰었고, 우리홈쇼핑 매각 재료가 부각되면서 올 초에는 18만 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현재의 주가는 14만~15만 원을 맴돌고 있다.
경방 측은 “앞으로 지분을 추가 매수하거나 대표이사를 변경하는 주주총회를 요청할 계획이 없다”면서 “이번 지분 변동은 순수하게 외부 M&A 가능성에 대응한 조치로만 봐달라”고 주문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