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성이 그룹 신성장 동력으로 2차전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사진은 효성그룹 전경. 일요신문 DB |
2차전지란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충전해서 다시 쓸 수 있는 전지를 말한다. PC나 휴대폰 등에 쓰이는 소형과 전기자동차나 ESS 등에 쓰이는 중·대형 등으로 대별된다.
효성의 2차전지 사업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효성은 전기차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한창이던 지난 2008년께 2차전지 사업 진출을 위해 TFT(태스크포스팀)까지 꾸리고 관련 연구개발(R&D) 인력까지 영입했다. 그러나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관련 조직을 해산했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신산업의 경우가 그렇지만 휘발유 자동차가 여전히 주류인 시대에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전제로 하는 (중대형) 배터리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며 “당시 조석래 회장이 전면적 투자를 망설이다가 결국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재 2차전지는 전기차 시장이 가격과 인프라 등의 문제로 예상보다 더디게 열리고 있어 성장이 정체를 겪고 있다. 전기차 시장 조기 활성화를 전제로 공격적 배터리 사업 투자에 나선 LG, 삼성, SK 등 대기업들의 중대형 배터리 공장은 낮은 가동률을 보이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과도한 물량 예측과 이에 따른 과잉투자로 인한 단기적 상황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차 전지 관련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전기차 시장 규모에 대한 전망은 애초 지나치게 장밋빛이었다”며 “그러나 2015년께부터는 점차 의미 있는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기업으로서는 선제적 투자를 집행했다고 보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2012년 17조 원대를 기록한 2차전지 세계 시장 규모는 오는 2020년에는 60조~70조 원으로 4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의 주체는 중대형 배터리다. 국내 에너지 전문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2년 약 17조 원인 세계 2차전지 시장에서 중대형은 1조 원 안팎의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는 2020년 예상 시장규모 60조~70조 원 중 약 35조 원이 중대형 배터리의 차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2020년께부터는 본격적인 성장세에 접어들 것”이라며 “중대형 배터리가 전체 2차전지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제품 시장뿐 아니라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 2차전지 4대 핵심 소재 시장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포스코, 한화, GS 등의 대기업들이 잇따라 사업 진출에 나서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이미 효성도 관련 사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전력공사가 주관하는 전기차 공동 이용 시범사업의 ‘충전시스템 사업자’로 선정되며 전기차 충전인프라 사업에 뛰어들었고, 9월에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사업도 본격화했다. 지식경제부 스마트그리드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구리 농수산물센터에 용량 500㎾h급 ESS를 구축하기로 한 데 이어, 11월에는 홍콩 전력청에 400㎾h 규모의 ESS 구축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런데 효성은 자사의 PCS(전력변환장치)에 LG화학과 삼성SDI의 ESS용 중대형 배터리를 결합해 ESS를 구축했다. PCS는 일종의 배터리 통합 관리 시스템으로 배터리를 이용해 에너지를 직류에서 교류로, 교류에서 직류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효성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전기차와 ESS 등에 들어가는 중대형 2차전지 시장의 본격 성장이 이뤄지기까지는 약 10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효성이 지금이라도 적극 투자에 나선다면 향후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효성이 ESS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미 배터리 사업으로의 확장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해석하고 있다. 기존 편광필름 분야에서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분리막 분야에서는 기초기술 수준은 확보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나머지 분야도 기술 이전 등의 방법을 통하면 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관건은 2차전지 시장도 점차 규모의 경제 형태를 띠어감에 따라 이에 걸맞은 대규모 투자가 뒷받침될 수 있느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2차전지 완제품 사업을 시작하려면 최소 1000억 원 이상의 투자는 필요하다”며 “결국 효성이 배터리 사업에 얼마만큼의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사업 성패를 가를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백억 원의 초기 투자금을 집행해 소규모로 사업을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최근 배터리 업체들이 주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과 대규모 독점 공급 계약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고객사를 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한다고 하더라도 단가를 맞추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효성이 전도유망한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들더라도, 오너인 조석래 회장의 명운을 건 대규모 투자가 없이는 성공을 쉽게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