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한국대부금융협회에서 직접 받은 대부업 교육. 단 하루 교육을 받은 뒤 대부업자로 등록할 수 있는 이수증이 나왔다. |
검찰과 경찰은 지난 4월부터 집중단속을 벌여 불법 대부업자 1만 702명을 적발했다고 12월 17일 밝혔다. 올해 7월 현재 등록된 대부업체 수가 총 1만 2144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처럼 불법 사채가 활개를 치는 큰 이유 중 하나로 대부업 자격요건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현행 대부업법은 한국대부금융협회에서 8시간 동안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대부업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실제론 어떨까. 대부업체 등록 과정을 직접 체험해봤다.
대부업자 등록을 위한 교육 신청은 한국대부금융협회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전국 5개 주요 도시에서 한 달 13~15회 정도 교육이 이루어지며 교육비는 10만 원이다. 신청 단계에서는 본인의 영업 종류를 선택하게 돼 있었다. 신용, 담보, 중개, 채권추심 등 7개 분야가 있어 기자는 고민 끝에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는 ‘신용’을 골랐다.
지난 21일 오전 9시, 대부금융협회 1층 강연장에 도착해 본인 확인을 하고 교재를 건네받았다. 670페이지에 달하는 교재였다. 앞서 고민 끝에 선택한 영업 종류와 상관없이 교육 내용은 동일했다. 기자와 함께 등록한 교육생은 남자 32명, 여자 11명으로 총 43명이었다. 영화나 TV에서 보던 ‘사채업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지만 예상외로 대부분 평범한 인상이었다.
국민의례 후에 교육이 시작됐다. 깃대에 꽂힌 큰 태극기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강단 옆을 지켰다. 교육장의 테이블은 두 명이 함께 쓰는 구조였다. 기자의 옆에는 20대로 보이는 남성이 앉았다. 그는 준비해온 노트를 꺼내 강사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육생 대다수가 결연한 표정으로 강사의 말을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오전 10시가 지나자 옆에 앉은 청년은 휴대폰을 꺼내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이즈음부터 교육생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나이가 많고, 등록증 갱신을 위해 온 기존 대부업자는 강의 중간에 강사에게 질문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비교적 젊어 보이는 교육생들은 저마다 다른 일에 몰두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대부업 세무회계 강의가 시작됐다. 옆자리 청년은 식곤증이 몰려왔는지 엎드려 잠을 청했다. 그는 다음 강의인 공정채권 추심법 강의 때까지 깨어날 줄을 몰랐다.
공정채권 추심법 강의는 교육생 다수의 높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강사가 불법추심 사례를 소개할 때마다 추임새처럼 교육생들의 반응이 있었다. 가령 “임산부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추심했는데 출산 때까지는 전화를 자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그럼 첫째 낳고 둘째 임신하면 2년 동안 아무 것도 못하는 거냐”, “그러려면 남의 돈을 쓰지 말아야지…” 같은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교육이 끝나고 이수증을 받아들자 강사에게 질문하기 위해 남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날 교육을 받은 43명은 6개월 내에 시·군·구청에 등록하면 대부업체를 차릴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국에서 손을 쓸 모양새다. 서울시는 지난 6일 △현재 마련되지 않은 최소순자산액을 5000만 원으로 정하고 △건축법상 숙박시설만 배제됐던 고정사업장 확보 요건을 숙박시설을 포함해 단독주택, 공동주택도 배제하며 △교육 참석으로 끝이었던 것을 시험까지 통과하도록 변경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대부업법 개정건의안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금융위 역시 건의안에 대해 상세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후보 시절 공약으로 대부업법 개정을 내세운 바 있다. 공약 내용은 △일정한 자본금 및 인적 요건을 부과해 무자격 업체의 난립 방지 △중소 대부업체의 대형화 유도 △대부업을 금융감독원의 공적 감독대상으로 편입하는 것 등이다. 서울시의 건의안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인수위 활동이 본격화하면 대부업법 개정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구청 담당자는 “지난 4월에는 관내에 160개였던 대부업체가 12월에는 130개가량으로 줄어들었다”며 “매달 2건 정도 신규등록이 있는데 그보다 많은 업체가 폐업한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대부업법이 제정된 2002년 이후 등록된 대부업체는 꾸준히 증가해 2007년에는 1만 8000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감소를 거듭해 지난 7월에는 1만 2144개 업체만이 등록된 상태다. 이는 2007년 연이율 상한선이 66%에서 49%로 줄어든 것과 연관이 있다. 이후로도 연이율 상한선은 계속 내려가 2010년 44%를 거쳐 현재는 39%로 책정돼 있다.
대부업계에서는 대부업 관리감독 철저와 진입장벽 생성에 대해서 반색하면서도 이자율 상한선 조정에는 난색을 표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측은 지금 나오고 있는 방안들은 협회에서도 이전부터 제안하던 것이라며 반겼다. 그러나 현재 불법사채가 증가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재성 한국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연 이자율 39%로는 업체 운영조차 힘들다”며 “줄어든 등록 대부업 종사자들은 등록증을 반납하고 불법사채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일부 대형사 외에 소형 업체들은 연쇄적으로 문을 닫고 이 중 상당수는 불법사채로 전환해 영업하리라는 것이 협회의 분석이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난립하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을 한다. 처벌이 약하다 보니 ‘적발되면 벌금 몇 푼 내고 말지’ 식의 영업이 많은 것이다. 이에 법무부는 피해자에게 법정 이자율 초과 부분을 돌려주는 것 외에도 대부업자가 불법으로 얻은 이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금융업 관계자들은 대부업법의 제정 취지가 고금리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인 만큼 불법 사채에는 철퇴를 내리고, 대부업 전반의 관리·감독이 철저히 이루어지도록 대부업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우중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