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 고발 없이 재벌 등에 솜방망이 처벌을 일삼는다는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일요신문 DB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민주화 공약 실천의 연장선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등 공정위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정위에 대한 불신이 내재돼 있다. 공정위는 그동안 ‘경제 검찰’로 불리며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왔지만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잇따른 대기업 봐주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친 재벌 경제시스템 강화에 앞장섰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 발표한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간 ‘4대강 영주댐 담합 사건’은 이러한 비판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최근 공정위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 지난 2009년 ‘4대강 정비사업’ 중 영주다목적댐 건설공사의 입찰과정에서 설계 내용을 담합, 공정거래법 19조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양사는 두 차례의 모임과 유선 연락을 통해 동물과 물고기 이동통로는 설치하지 않기로 하고 모래를 흘려보내는 수문은 1개만 설치하기로 입을 맞췄다. 합의서까지 작성됐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은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70억 4500만 원과 24억 9100만 원 등 총 95억 3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그런데 과징금 액수가 지나치게 낮게 산정된 점, 가격 담합은 인정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대기업 봐주기 식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먼저 과징금 액수와 관련된 논란이다. 삼성물산이 2214억 원의 입찰 금액을, 대우건설이 2213억 원의 입찰 금액을 제시해 삼성물산이 당시 공사를 따냈다. 애초 거론된 과징금은 300억 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70% 이상 과징금이 깎인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법상으로 정해진 과징금 액수는 관련 매출의 10%. 공정위의 추가 설명에 따르면 입찰 금액을 계약 금액으로 보고 부가가치세를 떼고 계산해 보면 200억 원이 나온다. 여기에 대우건설은 입찰에 떨어져 실제 발생 매출액이 전혀 없음에도 사전에 담합을 했기에 관련 매출액의 절반인 10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과징금이 총 300억 원가량이다. 하지만 이건 법상 최고 한도일 뿐이라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300억 원에서 가중·감경 요소를 고려해 최종 결정된 과징금이 95억여 원이다. 감경 요소로 감안된 사유는 건설 경기 침체와 대우건설의 영업 적자다. 공정위 관계자는 “살인죄의 경우에도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지만 살인자가 모두 사형을 선고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이러한 설명에 모든 이들이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공정위의 과징금 감경 경향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2008년부터 올해 10월까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이 부과된 1195개 업체의 398개 사례를 분석한 결과, 관련 매출액은 253조 원에 달했으나, 기본과징금은 11조 1976억 원으로 평균 부과율이 4.4%에 불과했다.
또 기본과징금에서 71.7%의 감경 및 감면 조치가 행해져 관련 매출액 대비 최종 과징금 부과율은 1.2%(3조 1682억 원)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같은 기간 과징금을 가중한 사례는 1195업체 중 30업체로 전체의 2.6%밖에 되지 않은 반면, 50~99%를 감경한 업체는 768개로 64.3% 달했다.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제도 등으로 인해 100% 감면 조치한 업체도 6.7%(80업체)에 이르렀다.
영주댐 가격 담합의 경우, 양사의 입찰 금액이 공사비의 0.04% 수준인 1억 원 차이임에도 이메일 등의 ‘명시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됐다. 이에 대해 ‘4대강 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항진 상황실장은 “단독 입찰이 아닐 경우 참여자들끼리 돈이 오고 가고 입찰 금액도 정해지는 게 관행”이라며 “이메일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검찰 고발도 하지 않고 무혐의 처리하는 것은 치졸하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이어 “시장 경제 교란 방지를 위해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이 부여됐는데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국책사업의 돌격대격인 대형 건설사들을 ‘솜방망이 처벌’한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며 “건설사 문제를 건드리면 정권의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정위가 알아서 엎드린 결과”라고 했다.
지난 2009년에 결정적 담합 증거를 잡고도 무려 3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결과가 발표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다. 특히 대선을 의식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 측은 “담합 조사는 보통 2~3년이 걸리는데다가, 이번 건의 경우 ‘설계 내용 담합’이라는 유례 없는 새로운 담합이라 ‘입찰 담합’으로 처리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법리 검토에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항진 실장은 “국책사업 담합이라는 위중한 사안인 만큼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사했어야 했다”고 반박했다.
국회 법제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정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행위로 시정명령 이상을 조치한 건수는 1766건이고 이중 검찰에 고발한 것은 30건(1.7%)에 불과했다.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의 고발이 없어 검찰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법률 위반 행위가 100건 중 98건이나 되는 셈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재벌의 소유구조 규제나 사익 추구 등 불법 행위 근절을 위해 전속고발권 등 강력한 권한이 부여된 공정위가 고발 없이 재벌 등에 솜방망이 처벌을 일삼으면서 이 권한의 실효성을 떨어트린 측면이 있다”며 “강력한 처벌을 통해 (잘못된 시장 주체에게) 잘못된 학습효과를 생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전속고발권의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중소기업청장과 조달청장, 국가권익위원장, 감사원장 등에게 고발권을 주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에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폐지가 공정위의 존립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최근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공정위는 차기 정부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처벌 근거를 강화하는 등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핵심 역할을 해야 할 공정위의 역량 발휘는 결국 공정위 자체 개혁에 먼저 방점이 찍히는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