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계열사 중에 한화에스앤씨(S&C)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01년 (주)한화의 정보부문이 분사한 것으로 비상장 SI(시스템 통합)업체다. 설립 당시 지배구조는 (주)한화가 40만 주로 지분율 67%, 김승연 회장이 20만 주로 33%를 보유했었다.
2005년 4월 김 회장은 자신의 보유 지분을 차남과 삼남에게 각각 16.5%씩 증여했다. 두 달 뒤인 6월에는 (주)한화 보유지분 67%가 장남 동관 씨에게 팔렸다. 거래금액은 주당 5100원(총 20억 5000만 원)이었다. 이로써 한화S&C는 김승연 회장 아들 삼형제의 회사가 됐고 특히 장남 동관 씨는 처음으로 계열사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그 뒤 한화S&C는 계열 광고대행사인 한컴 지분 100%도 가져와 덩치도 키웠다.
당시 한화 측은 부인했지만 이를 두고 ‘한화가 3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대두됐다(<일요신문> 687·741호 보도). 장자 승계구도의 안정적 발판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 게다가 IT회사를 통해 경영수업을 하고 자금도 확보하는 방식의 재벌가 경영권 승계가 ‘유행’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주)한화와 동관 씨와의 ‘거래’가 탈이 났다. 문제는 매각 가격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5월 28일, (주)한화 이사회 앞으로 한화S&C 지분 매각 가격의 근거와 경위에 대해 비공개로 질의했다. 이에 대해 (주)한화 이사회는 전화 답변을 통해 △매각가인 5100원은 외부 회계법인이 DCF법(미래현금흐름할인법)에 따라 산정한 것이며 △이를 김동관 씨에게 매각한 것은 김동관 씨 본인이 IT업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왔다.
경제개혁연대도 내·외부 전문가들에게 요청해 (주)한화의 평가방법과 동일한 DCF법에 따라 2005년 당시 한화S&C 주식 가치 평가를 의뢰했다. 그 결과 한화S&C의 적정 주당 가치는 실제 거래가격인 주당 5100원보다 훨씬 높은, 주당 3만 308원에서 최저 1만 1669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 김승연 회장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승마 선수로 출전한 삼남 김동선 씨. 연합뉴스 | ||
한화S&C가 꾸준히 매출액이 증가하고 있는 부분에도 주목했다. 매출액 중에서 (주)한화를 비롯한 한화그룹 계열사 간 거래비중이 51.1%(2002~2006년간 계열사 매출액 비중의 산술평균)에 이를 정도로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회사라고 경제개혁연대는 보고 있다.
따라서 총 발행주식의 67%에 달하는 지배지분을, 경영권 프리미엄도 반영하지 않고 최소 20억 원 이상의 손해를 야기하는 가격으로 지배주주 일가에게 양도한 것이 (주)한화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결정인지 의문이라는 것.
경제개혁연대 측은 매각 시점도 문제 삼았다. 설립 이후 줄곧 영업이익을 내던 한화S&C가 유일하게 적자(약 40억 원)가 난 2004회계연도 직후에 거래를 함으로써 평가가격을 낮출 수 있는 시점을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 나아가 이 거래가 김승연 회장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일련의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팀장은 “재벌의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은 에버랜드식, 글로비스식, 광주신세계식으로 나눌 수 있다. 조금씩 공통점이 있지만 한화S&C가 지배구조상 주력기업이 아니고 설립시 지배주주가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면에서 ‘광주신세계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상장 계열사 주식 저가 매입→물량 몰아주기→상장으로 자금마련→주력 계열사 지분 매집 등의 과정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 한화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주)한화의 최대주주는 김승연 회장(22.78%)이다. 장남 동관 씨는 지난 몇 년간 지분을 조금씩 늘려 2대주주(4.44%)에 올라 있다. 나머지 두 아들의 지분도 3.43%로 늘었다. 지난해 김 회장의 모친 강태영 씨가 보유 주식 108만 주를 넘긴 천안북일학원은 지분율을 1.82%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경영권이 3세대로 넘어간다하더라도 확실한 우호지분 역할을 할 수 있어 주목을 받았다. 한화S&C 지분 매각도 이런 일련의 과정과 함께 이뤄진 측면이 있다.
김승연 회장의 항소심이 진행 중인 미묘한 시점에 악재가 불거지자 한화그룹 측은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가격산정, 평가방법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우리 IR팀이 경제개혁연대로 가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실 2년 전에 이뤄진 일이고 이후에도 언론에서 간혹 다뤄졌었다. 지금은 ‘반 오너 정서’의 영향이 있지 않나라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최 팀장은 “2년 전 일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5월 발간한 <경제개혁리포트> ‘왜 재벌 총수 일가는 IT회사를 선호하는가’를 작성하며 확인됐기 때문에 이제야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다”면서 “김 회장 재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의 문제제기는 재벌 총수한테는 불리하지만 회사에는 이익이다. 아직도 회사와 총수를 동일시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개혁연대는 (주)한화 이사회에 공개질의에 대한 성실하고도 빠른 답변을 촉구하면서 이후 답변 여부 및 그 내용을 검토해 법적 책임을 추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 사건도 에버랜드 사건의 전철을 밟는다면 김승연 회장은 다시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김 회장의 앞에 ‘눈 위에 서리까지 내린 길’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