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고료고교는 일본 고교야구의 명문으로 꼽힌다. 여름 고시엔에서 네 차례 준우승을, 봄 고시엔(선발 고교야구대회)에서는 세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8월 7일 열린 1차전에서도 북홋카이도 대표 아사히카와시호고를 3 대 1로 꺾었다. 하지만 승리하고도 웃지 못했다. 불과 3일 뒤 고료고교 측은 “고시엔 2차전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대회 도중 논란으로 기권하는 것은 고시엔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발단은 올해 1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료고교 야구부 1학년 부원 한 명이 2학년 선배 4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야구부 생활 규정에는 기숙사에서 컵라면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돼 있는데, 이를 어기고 먹었다는 이유다. 학교 측 조사에 따르면 “가해 학생들은 1학년 후배의 뺨과 가슴을 때리고 멱살을 잡는 등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문제는 폭행 부원 4명에 대한 징계가 ‘1개월간 공식전 출전 금지’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오히려 피해 학생이 3월 말 전학을 갔다.
고료고교는 이후 고시엔 예선전에서 연전연승해 본선행 티켓을 땄다. 그런데 본선 개막 직전 SNS에 ‘고료고교 야구부 폭행’ 관련 글이 올라오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일본에서 고시엔은 단순한 고교야구대회가 아니다. 청춘들의 열정이 한데 모이는 ‘꿈의 무대’로 국민적 관심을 받는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출전 자격 관리도 엄격하다. “학교 내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가해 학생들이 본선에 나서는 것은 고시엔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여기에 “감독이 사건을 은폐했다” “가해 학생들이 폭행뿐만 아니라 변기를 핥게 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확산했다. 논란이 커지자 고료고교는 8월 6일 뒤늦게 사실관계를 공표했다. 다음 날 고료고교는 1차전에 나서 승리했지만, 경기 당일 또 다른 폭로가 터졌다. 전직 야구부원이 “2023년 감독과 코치, 일부 부원에게 폭행·폭언을 당했다”고 글을 올린 것이다.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고, 결국 학교 측은 “고시엔 2차전 경기 기권과 함께 나카이 데쓰유키 감독이 야구부를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2차전 상대는 미에현을 대표하는 쓰다학원인데 부전승이 확정됐다. 고시엔에서 기권패는 2021년에 출전 선수의 코로나19 감염으로 한 차례 있었지만, 학내 폭력과 같은 불명예스러운 기권은 처음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배경에는 “피해자에 대한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교야구 사고 대응에 오래 종사한 한 관계자는 “고료고교 측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을 처분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지만, 보다 확실한 조사와 진지한 대응 의지를 보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학교의 대응이 늦고 소극적이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핵심은 초기 대응과 사실관계 확인”이라며 “무엇보다 피해자 곁에 서서 숨김없이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숙사, 폭력과 괴롭힘의 사각지대
과거에도 야구부 부원 간 폭력 사건이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2011년 아오모리현 사립고 야구부 기숙사에서는 상해 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1학년 학생이 기숙사 소등 시간이 지난 뒤 야키니쿠(불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이유로 2학년 선배들에게 폭행을 당해 숨졌다. 2013년에는 오사카부 사립고 기숙사에서 선배 3명에게 폭행당한 1학년이 구급 이송되는 사건도 있었다.
최근에는 폭력보다 괴롭힘이 눈에 띈다. 일본학생야구협회가 2023년 9월 이후 2년간 발표한 대외 경기 금지 처분 가운데, 부원 간 괴롭힘이 이유인 건이 10건, 폭력은 2건 있었다. 이번 고료고교 사태처럼 대부분 기숙사가 무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의 눈이 닿기 어려운 폐쇄적 환경이 폭력과 괴롭힘의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오키나와 코난고교의 아키야 유 감독은 기숙사에서 선수들의 목소리를 세심하게 듣는다. “최근 기분이 나빴던 적이 없었는지, 폭행을 본 적이 없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선수들에게도 ‘호소할 용기’를 가르친다. 그는 “폭력이 형사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반복해서 교육한다.
오테몬가쿠인대 요시다 요시하루 객원교수(코칭론)는 부활동 전용 기숙사의 폐쇄성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계속 같이 집단으로 생활하다 보니 자택 같은 도피처가 없다”며 “애초 24시간 지도자가 모든 걸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스포츠를 하는 고등학생이라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만 하며 버텨라’하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