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생 아들의 회사 지분을 이용해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정윤수 성원건설 회장(왼쪽). 사진은 아랍에미리트의 한 회사와 토지매매를 계약하는 모습. | ||
성원건설은 지난 8월 17일 공시를 통해 전 아무개 외 특수관계인 8인이 34.08% (1209만 9639주)를 확보, 최대주주가 됐다고 밝혔다. 계열사인 성원산업개발이 시장에서 장내매수를 통해 지분을 종전 10.84%에서 11.38%로 늘리면서 최대주주가 바뀐 것이다.
성원건설은 그렇지 않아도 5월 초까지 5000원대에도 못 미치던 주가가 한달 만에 3만 7000원을 훌쩍 넘는 경이적인 상승률을 기록하며 증권가의 주목을 받아오던 터. 이런 상황에서 나온 최대주주 변경공시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최대주주인 전 아무개 군의 정체는 앞으로 성원건설을 놓고 치열한 경영권 싸움이 전개될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올해 14세(94년생)의 중학생인 전 군은 다름아닌 전윤수 성원그룹 회장의 외아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그저 오너의 나이 어린 외아들이 일찌감치 경영권을 확보해두는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성원건설은 사정이 좀 다르다.
성원건설은 외환위기 여파로 지난 99년 화의를 신청했고, 2003년 11월에야 화의가 종료됐다. 2005년 말에는 한때 성원그룹 계열사였던 대한종금이 성원건설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해 34%의 지분을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전 회장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사회봉사명령과 보유주식 매각명령 등을 받아 경영권을 잃을 뻔했고, 지금도 연대보증 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 회장은 지난 3월 법원으로부터 연대보증 채무에 대한 이자 명목으로 보유 중인 성원건설 지분 7.5%를 매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로 인해 전 회장의 지분율이 2.11%로 떨어지면서 성원건설의 최대주주는 34.06%를 보유한 대한종합금융으로 변경됐다.
이런 상황에서 외아들 전 군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우선 이번 지분변동으로 전 회장 측은 36.06%를 확보, 대한종금을 2대주주로 밀어내고 다시 대주주 자리에 복귀했다.
전 회장 측의 우호지분은 전 군 외에 성원산업개발(11.38%), 전윤수 회장(2.11%), 성원아이컴(1.06%)을 비롯해 부인 조애숙 씨(0.1%), 사장인 처남 조해식 씨(0.03%), 장녀 전정원 씨(1.31%)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전순원(1.31%), 전기정 씨(1.31%) 등의 친인척도 일부 지분을 갖고 있다.
개인 최대주주인 전 군은 그동안 꾸준히 지분을 늘려 15.48%를 갖고 있다. 전 회장이 중학생인 아들을 통해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구도인 셈이다.
전 회장 일가의 최대주주 복귀가 현재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추진 중인 성원건설 지분 매각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재 예보가 관할하고 있는 대한종금파산재단은 성원건설 지분 34.05%와 비상장회사인 성원산업개발 지분 25% 매각을 추진 중이다.
증권업계에선 예보가 매각을 추진 중인 지분 34.05%를 전 회장 일가 외에 제3자가 인수한 뒤 4~5%만 추가로 확보할 경우 현 경영진과 경영권 확보 경쟁을 벌일 수 있다고 분석해 왔다.
▲ 성원건설 본사 | ||
그간의 진행과정을 보면 전 군은 성원그룹이 쇠락하는 과정에서 전 회장이 경영권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재산을 지키는 수준이 아니라 전성기 못지않은 막대한 재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줬다.
전 회장은 1997년 대한종금의 영업정지일 직전에 당시 네 살이던 전 군에게 5억 원짜리 서초동 부동산을 넘겼고 전 군은 이 부동산 등을 종잣돈으로 회사 지분을 대거 매입해 성원건설 1대주주에 오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 군이 보유한 성원건설 지분 15.48%는 800억 원이 넘는다.
전 군은 2004년부터 성원건설 등 계열사 지분을 꾸준히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전 군이 이들 주식을 사들인 매입자금의 출처는 모두 자산매각으로 신고돼 있다. 전 군이 네 살 때 물려받았던 5억 원짜리 서초동 부동산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0년 만에 160배로 재산을 늘린 셈이다.
특히 전 군은 12세이던 지난 2005년 계열사인 성원산업개발을 활용해 모기업인 성원건설 지분을 확보하는 고단수의 재테크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 군 등은 지난 2005년 성원산업개발에 5억 원가량을 빌려주고, 대신 성원산업개발이 갖고 있던 성원건설 출자전환채권 25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이 출자전환채권은 주식으로 전환돼 전 회장 일가가 재산과 경영권을 지켜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비범한 재테크 능력을 갖춘’ 미성년 아들을 둔 덕에 전 회장은 사실상 전재산이 가압류된 상황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왔다. 전 회장은 딸들을 미국 유명 사립고등학교와 대학 등에 유학 보냈고 이들을 성원그룹 경영일선에 불러들여 자신 곁에 두고 있다.
전 회장의 둘째 딸인 전순원 성원건설 상무는 해외사업부를 맡고 있고, 셋째 딸인 전기정 이사는 홍보업무를 맡고 있다. 특히 전 상무는 얼마 전 성원건설 주가를 들썩이게 했던 ‘두바이 20조 원 프로젝트’를 수주해온 주인공이다. 30세를 갓 넘긴 전 상무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어 전 회장의 해외출장 때마다 통역 역할을 맡아왔으며, 해외사업부를 통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 상무가 이번 두바이 프로젝트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에 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해외유학파라고는 하지만 전 상무는 물론 성원그룹 내에도 해외사업을 해본 인사가 거의 없는 데다 여성을 사업파트너로 잘 인정하지 않는 중동의 문화를 감안할 때 이례적이라고 할 만한 실적인 것이다. 게다가 이번 공사는 성원건설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다른 건설업체들과 컨소시엄형태로 참가하는 것이어서 성원건설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점도 업계에 구구한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해 6월 초 3만 7500원까지 치솟았던 성원건설 주가는 수주의 현실성과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주가는 다시 2만 원대로 주저 앉았고, 최근 증시 폭락사태 속에서 1만 5000원대까지 밀린 상황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