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회장과 장남 김동관 실장. |
신년사도 없었다. 시무식도 뒤늦게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렸다. 한화그룹이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이 지난해 8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법정구속된 상황에서 한화의 겨울은 날씨보다 더한 ‘혹한’일 수밖에 없다.
서울 장교동 본사의 리노베이션(건물 개·보수) 공사도 빙판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리노베이션은 천천히 진행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1평도 채 되지 않는 차가운 곳에서 회장님이 고생하고 있는데, 아래 직원들이 먼저 호사를 누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회장님이 감옥에서 나오셔야 장교동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게 한화의 입장이다. 이처럼 요즘 한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김 회장 구속 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위축돼 있는 상태다.
김 회장이 끔찍이 아끼는 세 아들들도 ‘아버지 없는 겨울나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고, 자신은 자신이다. 든든한 후원자가 없는 와중에서도 이들은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부친 옥바라지에도 정성을 들이고 있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1주일에 두 차례가량 변호사와 가족이 김승연 회장 면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 중국에 있는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경영기획실장(30)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면회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신정에는 별도 면회가 없었고, 그 다음날인 2일 변호인들과 가족들이 면회를 했다.
▲ 부친 김승연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태양광 사업이란 경영능력 시험대에 오른 김동관 실장. 그러나 세계시장의 불황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재계 관계자는 “한화가 태양광 사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여기에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들의 경영권 승계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라며 “호랑이 등에 탄 한화는 이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기호지세(騎虎之勢)’의 운명이 됐고, 그저 태양광 업황이 빨리 좋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으로서는 공급과잉으로 세계적으로 태양광 사업이 최대 불황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제적 투자를 통해 장남에게 불황 끝에 올 호황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게 함으로써 경영 승계까지 안정적으로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인 셈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영어의 몸인 탓에 아들의 태양광 사업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오히려 김 실장이 중국과 한국을 수시로 오가며 부친의 면회와 관련한 회의를 주재하고 직접 면회에 참석하는 등의 사업 외적인 일로 사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갖가지 사건에 연루되며 끊임없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차남 동원 씨(28)는 그룹와 무관한 공연 기획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대표 승마 선수로 잘 알려진 3남 동선 씨(23)는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은 김 회장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서울고법 형사7부는 8일 김 회장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오는 3월 7일까지 두 달간 구속집행을 정지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병세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 이 기간 중 김 회장의 주거지도 주소지와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 등으로 제한되면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이 차기 정부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한화는 물론 세 아들들의 근심도 동시에 깊어지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