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유는 지난해 7월 감사원의 연기금투자풀 감사에서 삼성운용의 잘못이 다수 지적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연기금투자풀 결정권을 가진 기획재정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효과를 낳았고, 결국 12년간의 독점이 깨졌다.
그런데 독점을 깬 주인공이 한국운용이란 점이 미묘하다.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탄생한 한국투자금융그룹은 오랜 기간 삼성과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 통합 한국투자증권 초대 사장인 H 씨는 삼성증권 부사장 출신이었고, 삼성카드와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내 ‘메가톤급’ 기업공개(IPO) 주간사도 모두 한국증권의 몫이었다.
또한 지난 2004년 동원자산운용 때 출시해 한국운용까지 계승된 ‘삼성그룹주 투자펀드’는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 주식형 펀드로, 삼성그룹 주가에 든든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삼성그룹주 펀드가 커지면서 현재 지분율 10% 이상을 보유, 대주주로 있는 삼성 계열사도 여럿일 정도다. 이처럼 각별한 삼성과 한국의 관계 때문에 이번 연기금투자풀 선정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한국운용 관계자는 “3년 이상 준비했고, 치열한 경합 끝에 마침내 주간사 자격을 따냈다”면서 “당장의 수익보다는 국내 최고 기관투자자들에게 운용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삼성운용 관계자는 “비록 공동운용 체제가 됐지만, 지난 12년간의 노하우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내용 면에서는 삼성운용이 최고라는 점을 입증받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이번 한국운용의 공동주간사 선정은 ‘삼성의 선택’이라는 억측도 나온다. 지난 7월 감사원의 연기금투자풀 감사결과 삼성운용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독점주간사 자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비교적 우호적인 한국운용을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내용이다.
연기금투자풀 유치에 나섰던 또 다른 경쟁자인 미래에셋의 경우 평소 삼성이 썩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미래에셋이 삼성 출신을 채용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삼성에서 미래에셋 출신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다.
보험, 증권 분야에서 국내 1위인 삼성은 유독 자산운용과 신용카드에서만 1위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미래에셋과 치열한 수위 경쟁을 해온 삼성은 최근 일임자산까지 자산운용사 수탁고에 계산되는 제도 변경을 통해서야 마침내 미래에셋을 제치고 업계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내놓아야 할 수혜라면 라이벌에게만큼은 주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