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민의 빈소가 6일 고려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조문객들이 분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여자친구와의 결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최근 그 친구를 둘러싼 힘든 환경이 더 이상의 삶을 버겁게 한 것으로 보인다.” 고(故) 최진실의 전남편이자 야구선수였던 조성민의 자살 원인을 놓고 다양한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조성민의 지인은 그의 자살이 단순히 이성 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밝혔다. 조성민이 자살하기 직전 자신의 모친에게 “저도 한국에서 살 길이 없네요. 엄마한테 죄송하지만 아들 없는 걸로 치세요”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성민은 이 땅에서 ‘조성민’이란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데 대해 힘겨움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후배들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꿈을 키웠지만, 두산 2군 코치에서 물러나며 재기가 불투명해졌고, 해설위원으로 복귀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며 사업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려 했던 부분도 번번이 실패로 끝나며 경제적인 압박까지 받아야만 했다. 최근 자신의 모교인 고려대에서 후배들을 위해 헌신하고자 했으나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민의 지인을 통해 조성민이 자살을 하게 된 속사정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봤다.
“조성민은 술만 마시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 ‘옛날’은 고 최진실 씨와 ‘누나’ ‘동생’으로 만났던 그 시간들이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고인과 결혼하지 않고 누나, 동생으로 지내며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서로 아픔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았겠느냐며 한탄했다.”
조성민은 최진실을 먼저 떠나 보낸 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두 사람의 잘못된 인연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연예계와 야구계에서 가장 잘나갔던 두 스타가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되었지만 짧은 결혼 생활과 이혼으로 이어진 치열한 과정들, 그리고 자살로 막을 내린 최진실의 부재는 조성민한테도 큰 충격이었고, 오랫동안 조성민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덕거리며 살아갔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먼저 사업을 통해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로 끝났다. 야구 해설위원으로 조성민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지만 두산베어스 2군 재활 코치로 들어가는 바람에 해설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나 조성민은 1년 만에 두산에서 나와야 했다. 구단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해설위원으로 복귀하려 노력했다. 처음 몸담았던 MBC ESPN을 비롯해 여러 군데 자리를 부탁했지만, 그 또한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이전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을 때 방송 스태프들과 마찰을 빚었던 게 조성민의 복귀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강한 조성민은 해설을 하며 몇 차례 방송 관계자들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마다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조금씩 방송 관계자들에게 ‘불편한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야구만 알고 살았던 조성민은 사회성이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자존심으로 버텼는데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존심마저 상처를 받았고, 일도 사랑도 다 잃고 사라진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성민은 지난 12월 2일 있었던 SK 조인성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폭행 사건에 연루되며 구설수에 올랐던 터라 조성민의 등장에 야구인들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조성민은 지인에게 “나의 이런 모습이 정말 창피하다. 빨리 나가고 싶다”며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 했다고 한다.
“최근에 조성민은 모교인 고려대 감독 자리를 알아봤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이 뭔가를 해보려 해도 번번이 브레이크가 걸리고 잘 풀리지 않는 현실에 대해 자괴감이 심했다. 아마도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이 그를 좌절로 내몬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가져보겠다고 지인들에게 다짐처럼 말해왔다는 조성민. 그는 자신을 옥죄었던 삶을 스스로 마감하면서 아이들과도 영원히 이별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겪고 감당해야 할 슬픔의 무게를 안타까워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