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
증권업계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현정은 회장은 지난 7월 말 A 증권사에 있는 본인 명의의 위탁계좌에 8억여 원을 입금시켰다고 한다. 며칠 뒤부터 현 회장은 8월 초까지 코스닥에 상장된 네 종목을 집중 매수, 7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사용했다. 이후 현 회장은 7억여 원을 더 입금해 역시 코스닥 두 종목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당시 매수한 이 종목들을 9월 6일 현재까지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재벌 총수의 주식 매매는 ‘투자 실력 엿보기’ 정도의 증권가 가십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현 회장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현 회장은 계열사인 현대증권의 고문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거래법 제42조는 ‘증권회사의 임원 및 직원은 급여액에 대한 일정률을 증권저축하는 경우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명의로 하든지 본인의 계산으로 유가증권의 매매거래 또는 그 위탁을 하지 못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현 회장이 이 조항을 위반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증권거래법상 증권사 임직원은 저축계좌를 통해서만 본인 월 급여액의 50% 범위 내에서 주식 매매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 회장이 사용한 계좌는 저축계좌가 아닌 위탁계자였다.
증권거래법 42조를 위반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어 형사범죄에 해당한다. 또 투자 원금을 기준으로 3000만 원 미만은 견책, 3000만 원 이상은 감봉, 2억 원 이상은 정직, 5억 원 이상은 면직된다. 현 회장은 1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사실로 확인되면 면직될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현정은 회장은 고 정몽헌 회장 사후인 2003년 9월 현대증권과 고문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현재까지 그는 월 3000만 원씩 고문료를 받고 있다(<일요신문> 793호 보도). 이에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현대증권 지부는 지난 7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현정은 회장에게 많은 고문료를 지급하는 것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며 현 회장의 고문료 지급 중단 요청을 거부한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여기서 현 회장의 직함인 ‘고문’이 증권회사의 임직원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현 회장은 증권회사의 임직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정은 회장의 개인적인 주식 거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문은 자문의 개념으로 임직원으로 볼 수 없는 것으로 안다. 자체적으로 금융감독당국에 문의한 결과 임직원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예 증권거래법 제42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은 매달 수천만 원의 고문료를 받고 대주주로서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법적 실질적 형식적 임직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증권업계의 다른 고위관계자도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급을 받는 고문이라면 임직원으로 봐야 할 듯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현 회장은 지난 2003년 고문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증권업협회에 ‘직원 조회신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감독당국에 문제의 당사자를 밝히지 않고 문의한 결과 한 관계자는 “고문이라는 직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권사와 당사자의 계약과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알아야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때문에 향후 ‘고문 논란’은 지속될 듯하다.
현정은 회장은 지난 3월 7일 한 포럼이 주최한 ‘윤리경영 CEO 서약식’에서 60여 명의 국내 CEO(최고경영자)들과 함께 “윤리경영을 실천하겠다”고 서약했다. 현 회장은 특히 참석한 CEO들을 대표해 ‘우리의 다짐’ 을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만약 위법적 주식매매가 사실로 확인되면 현 회장의 윤리경영은 타격을 입을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