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SI 측에 따르면 당시 단속은 역사상 단일 현장에서 진행된 최대 규모였다. 체포 장면까지 공개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공개된 장면에는 노동자들이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찬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불법 이민자에게 가혹할 만큼 강경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자칫 국가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져 외교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구금 사태가 발생하고 하루 뒤인 9월 5일 “그들은 불법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측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해 실제 양국 간 신경전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다.
구금된 이들은 관광·출장을 위한 전자여행허가(ESTA)를 발급받거나 단기 상용 비자(B-1)로 입국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합법적으로 근로하려면 전문직 취업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E-2)가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이 확보한 해당 비자 쿼터(할당량)가 적다. 아울러 비자 신청을 하더라도 발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에 파견되는 노동자들은 그동안 ESTA나 B-1 비자로 입국해 업무는 보는 일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구금 사실이 알려지자 우리 정부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련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관련 부처에 주문했고 외교부는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박윤주 외교부 차관은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부차관과 통화를 갖고 구금된 우리 국민에 대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아울러 국무부 차원에서 공정하고 신속한 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지난 9월 8일에는 애틀랜타에 신속대응팀을 파견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미국에서 워싱턴 D.C. 주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포스코, 한화큐셀, 한화디펜스, 대한항공 등 8개 주요 기업 대표들을 만나 미국 진출 기업들의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사항을 위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단속이 결국 미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현지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단속으로 인해 공장 완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장 완공이 늦춰지면 그만큼 현지 고용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기업들은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고용 창출 강화 기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렇게 확정된 투자 계획 규모는 1500억 달러(약 208조 원)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7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 3월 미국에 4년간 총 260억 달러(약 36조 원)를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HD현대일렉트릭, 한화솔루션, 한화큐셀 등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사건이 확대될 조짐이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도 강경 기조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지금 이 나라에 배터리를 만들 때 배터리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가 그들을 돕고 일부 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리 국민이 배터리 제조든, 컴퓨터 제조든, 조선이든 복잡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더는 갖고 있지 않은 산업이 많으며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할 것”이라며 “훈련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을 데려와 일정 기간 미국에 머물게 해 돕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우리는 당신들의 투자를 환영한다.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뛰어난 기술을 지닌 똑똑한 인재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오도록 권장한다”며 “인재를 데려오는 것이 신속하게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자의 귀국에 앞서 이들이 숙련공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아 일하면서 미국 인력 교육훈련을 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풀려나는 등 이번 사건은 정리 수순을 밟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 관계자는 “미국 시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당장 진행하고 있는 미국 관련 사업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미국 출장 시 어떤 불이익이 발생할지 몰라 업무 상 미국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태가 장기화되면 (미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국내 기업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대미 투자 악영향을 내세우며 미국 정부를 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1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사태가 대미 직접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기업들이 매우 (투자를) 망설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는 현재 한국을 위한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기업 관계자들이 한미 간 협상을 내심 결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미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기업 관계자는 “기존에 관행적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던 비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면서 “우리 정부가 정치적으로 비자 문제를 해결하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데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조연성 덕성여대 국제통상학 교수는 “이번에 발생한 노동자의 구금 문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기업의 투자 규모에 비해 미국이 보장하는 비자 쿼터는 균형감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우리 기업들이 투자하는 사업 분야가 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인 만큼 우리 정부에 협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