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법원을 떠나는 김승연 한화 회장. 연합뉴스 | ||
당초 법조계와 재계 인사들 사이이선 김 회장의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레 퍼졌던 바 있다. 김 회장의 죄질이 징역형을 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정서가 재판부 내에 퍼져있다는 점이 어느 정도 알려졌고 김 회장 재판 속도가 다른 재벌 인사들에 비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까닭에서였다.
김 회장은 첫 공판이 열린 뒤 불과 나흘 만인 6월 23일 검찰의 징역 2년 구형을 받고 7월 2일 1심 선고(징역 1년 6개월)를 받았다. 1심 판결 이후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까지도 두 달밖에 안 걸렸다.
항소심 재판부 김득환 부장판사가 “1심 때도 이렇게 했으면 좀 좋아…”라고 했다고 알려진 것처럼 1심 실형 판결은 김 회장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한 ‘괘씸죄’ 성격이 짙었던 셈이다.
내심 1심에서 집행유예를 기대했을 법한 김 회장 측도 실형 선고 이후 김 회장의 병세 악화를 강조하는 한편 재판 중에는 반성하는 자세로 일관해 1심 때와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재계 정보통들은 1심의 실형 선고를 불의의 사태로 판단한 김 회장 측이 ‘법정에서 김 회장이 처신을 잘하면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것’이란 내부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일까. 1심 판결 이후 항소심 판결을 받기 전까지 김 회장은 병원 입원 치료를 받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등 중증 환자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화는 총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경영활동을 보였다. 7월엔 카자흐스탄의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SRC 지분을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시켰으며 한국석유공사 현대중공업 등과 함께 예멘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103억 원 투자 결정을 내렸다.
8월엔 계열사 아산테크노밸리 공장부지 확보를 위해 충남 아산 둔포면 일대 부지를 106억 원에 매입했다. 그밖에 한화갤러리아는 7년 만에 진주에 신규 점포를 열어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 한정돼 있던 갤러리아백화점 활동 영역을 서부 경남권으로 넓혔으며 커피전문점 ‘빈스앤배리즈’도 새 점포들을 늘려가고 있다.
김 회장이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는 동안 김 회장 명의의 주식 거래가 이뤄진 점 또한 재계 인사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7월 25일 김 회장 명의의 한화증권 지분 전량(156만여 주, 지분율 1.56%)이 매각됐는데 같은 날 ㈜한화가 같은 양의 지분을 사들였다. 7월 25일 종가(6만 1000원) 기준으로 김 회장은 950억 원가량을 현금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거래를 통해 ㈜한화는 한화증권 지분율을 종전 38.73%에서 40.29%로 높였다. ㈜한화의 한화증권 지배력이 이미 견고하므로 그룹 지배력보다는 김 회장의 개인 목적에 따른 주식 거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 회장은 ㈜한화의 최대주주(22.78%)며 35.01%의 우호지분을 확보해 ㈜한화를 지배하는 데 무리가 없다. ㈜한화가 한화증권을 지배하고 있으므로 김 회장의 한화증권 지분 매각이 지배력에 영향을 미칠 변수는 전혀 없다.
지난 8월 공시된 ㈜한화의 2분기 영업실적을 봐도 총수 부재 여파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한화의 2분기 영업이익은 313억 원으로 1분기(170억 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으며 전년 동기대비 41% 증가를 기록했다. ㈜한화는 상반기 순이익 1220억 원을 달성해 전년 동기대비 79% 인상이라는 실적을 냈다. 김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4월 말에 처음 보도되면서 한화그룹 전체가 2분기 내내 혼란에 뒤덮여 있던 것을 감안할 때 가히 총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성과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재계 인사들은 ‘김 회장이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는 사이에도 그룹 내 영향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휠체어를 탈 정도였지만 외형적 잣대만 놓고 보면 ‘수감 기간에도 그룹 경영 전반을 다 챙겼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리모컨 경영’ ‘휠체어 경영’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공식적인 그룹 경영 일선에 복귀하게 될 김 회장이 조만간 내부 기강을 다시 세우려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 회장 재판과정에서 그룹 고위직 인사와 한화 법무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사에 대한 거취 논란이 재계 인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된 바 있다. 수감 기간 중에도 그룹 전반을 꽉 쥐고 있던 것으로 평가받는 김 회장이 회장실 컴백 이후 어떤 칼을 뽑아들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