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제철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라는 정몽구 회장의 꿈이 이루어지게 된다. | ||
정 회장은 지난 2004년 10월 한보철강을 인수하고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다. 95년 말 제철사업을 그룹의 신규사업으로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96년부터 추진했던 경남 하동군 제철소 건설사업이 외환위기로 인해 98년 중단되자 잠시 주춤하던 중 어렵게 다시 뛰어든 철강업이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1일이면 한보철강 인수 3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당진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큰 변화가 있었던 현대제철 3년의 과정과 ‘철광석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를 향해 달리는 정몽구 회장의 꿈을 ‘전망’해 본다.
한보철강은 1997년 1월 부도 전 3000여 명이나 됐던 직원들이 부도와 함께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해 현대차그룹이 인수할 당시에는 3분의 1 수준인 1000여 명만이 공장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2004년 초 그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던 한보철강을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현대제철(당시 INI스틸)에 입찰 참여를 지시한다.
부도 이후 7년여를 표류하며 국가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던 한보철강을 인수, 그룹 내 철강 계열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일관제철사업 추진을 통해 만성적인 공급부족으로 철강소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철강재 관련 수요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특유의 현장경영과 품질경영으로 한보철강을 조기에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한 듯하다.
2004년 10월 1일. 마침내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했고 정몽구 회장은 이후 한 달이 멀다하고 당진공장에 들러 공장 정상화 진행 상황을 직접 점검했다. 이렇게 ‘새 주인’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니 한보철강 소속으로 무기력함에 젖어있던 현대제철 당진공장 임직원들의 정신이 번쩍 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부도로 회사를 떠났던 직원들도 하나둘 복직하기 시작했고 현대 특유의 추진력이 발휘됐다.
사실 외부에서는 한보철강이 부도 이후 7년간 가동이 중단돼 정상 가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A열연공장(철스크랩·고철을 이용해 열연강판을 생산하는 공장)을 인수 7개월 만인 2005년 5월 완전 정상화시켰다. 당초 정상화 계획을 두 달이나 앞당긴 실적이었다. 또한 설치공사 중 부도로 인해 방치돼 정상 가동한다는 것 자체에 의구심을 갖게 했던 B열연공장(고로 생산 반제품인 슬래브를 이용해 열연강판을 생산하는 공장)도 인수 2년 만인 지난해 10월 상업생산에 성공했다.
현대제철은 A·B열연공장의 조기정상화를 이룬 토대 위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04년 인수 이후 정상화 투자로 구축된 열연 및 냉연공장의 하부공정 틀 위에 상부공정 시설인 고로설비를 건설하겠다는 것.
현재 세계 2위의 전기로 제강업체라는 위상을 갖고 있는 현대제철은 2011년까지 연산 8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1년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현대제철의 조강생산능력은 현재 1050만 톤에서 1850만 톤 규모로 확대되어 세계 10위권의 철강업체로 도약하게 된다.
또한 800만 톤 조강생산체제가 완전 정상 가동되는 2012년에는 현대제철의 매출액이 9조 4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며 고품질의 강판 생산을 통해 조선 기계 가전 자동차 등 국가 핵심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일관제철소 조업이 정상화되어 안정적인 수익구조 기반이 마련되면 추후 400만 톤 규모의 고로 1기를 추가로 건설해 연산 1200만 톤 체제로 설비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현대제철의 조강생산능력은 2250만 톤으로 확대되어 세계 6위의 철강업체로 급부상한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사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막대하다. 특히 전통 제조업인 일관제철사업은 엄청난 설비투자를 요하는 장치산업인 동시에 대량의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문제 해소에 기여함은 물론 침체된 국내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경 | ||
뿐만 아니라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해외 철강업체에 의존해 온 열연강판과 후판 등 고급 철강재의 수입대체 효과(연간 50억 달러 수준)는 물론 원활한 수급을 통한 국내 수요산업의 경쟁력 배가에도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실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가 제철사업에 뛰어든 가장 큰 이유도 바로 냉연·열연강판 등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관제철소에 있다. 자동차 외장에 사용되는 냉연강판은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가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냉연강판의 원료인 열연강판은 국내에선 포스코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지난 2000년 포스코가 현대하이스코에 열연강판 공급을 거부하면서 법정분쟁까지 겪으며 봉합됐다. 일관제철소가 정상조업에 들어간다면 현대차는 원료 공급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철강 수요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철강재의 안정적 조달과 기능이 향상된 신강종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2008년부터 상용화할 하이브리드카의 경우 고강도 경량 강판 생산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철강업계에선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는 2011년이면 기존의 철강업계는 그만큼 기술발전이 이뤄져 현대제철의 제품을 바로 현대차에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품질엔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제철은 당진공장 A지구에 지난 2007년 2월 ‘현대제철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이 연구소에서는 현재 200여 명의 연구 인력들이 일관제철소 완공 이전부터 고급강판 제조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이곳에서 개발될 기술은 향후 일관제철소에서 고기능성 자동차용 신강종 생산에 적용, 한국 자동차산업의 차세대 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현대제철연구소는 자동차그룹 차원에서 석·박사급 연구진 400여 명을 유치해 조강생산과 열연강판 제조분야는 현대제철이, 냉연강판 제조분야는 현대하이스코가, 완성차 개발분야는 현대·기아차가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프로세스 단계별 연구개발’을 진행시켜 기술개발 분야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킬 계획이다. 현대그룹 측은 특히 제조업체와 수요업체 3사의 연구원들이 한 건물에서 호흡을 같이하기 때문에 전세계 일관제철소 사상 초유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지난해 10월 일관제철소 기공식에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위), 고로 생산 반제품인 슬래브를 이용해 열연강판을 생산하는 현대제철 B열연공장. | ||
정몽구 회장은 현대제철의 제철 원료조달 과정까지도 직접 챙겼다. 2005년 12월 정 회장은 호주의 BHP빌리튼사를 방문해 2010년부터 10년간 양질의 철광석과 제철용 유연탄을 공급받도록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07년 5월에도 브라질을 직접 방문, CVRD와 철광석 장기 공급 본계약 현장을 지켜보았다. 정 회장이 원료 조달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양질의 원료가 일관제철소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브라질 CVRD사 철광석 채굴현장을 직접 돌아본 정몽구 회장은 “최고 품질의 철강과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철광석 확보가 중요하다”며 “고로사업 성공에 장기적인 토대가 될 양질의 철광석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음으로써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사업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이 현재까지 제철원료 주요 공급업체인 BHP빌리튼과 리오틴토, CVRD, EVCC로부터 공급받기로 한 물량은 철광석 1200~1500톤, 제철용 유연탄 450~600톤으로 이는 연산 800만 톤급 일관제철소 운영을 위해 충분한 물량이다.
한편 현대제철은 일관제철소 사업을 위해 당진공장 B지구에 대규모 부두공사를 진행 중이다. 2006년 10월 일관제철소 기공식을 앞둔 시점에 5만 톤급 1선석을 완공했으며 올해 3월 3만 톤급 1선석도 완공했다. 현재 3만 톤과 5만 톤급 부두는 슬래브 수입 및 열연강판 수출부두고 활용하고 있다.
철광석과 원료탄, 석회석 등 주원료와 부원료 수입 전용 부두로 활용될 10만 톤급과 20만 톤급 각 1선석은 2008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8월 말 현재 기준 59%와 55%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제철 당진공장 20만 톤급 제철사업 전용부두는 최대 25만 톤급 대형 선박이 접안 가능하며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안 특성을 감안해 선박 접안 안벽의 높이가 33m에 달해 단일부두로는 국내 최대의 안벽 높이를 가진 부두가 될 전망이다. 또 당진공장 제철사업 전용부두 건설은 서해안에 최초로 25만 톤 대형 선박 접안시대가 열리게 됨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제철사업 전용부두가 완공되면 당진은 새로운 해상운송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며 ‘당나라(唐)를 오가던 큰 나루(津)’라는 지명에 걸맞은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