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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7일 한나라당의 ‘병풍’ 관련 기자회견 도중 이재오 총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정형근 의원. | ||
8·8재보선이 실시된 지난 8일 오후 5시쯤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진영이 아연 긴장에 휩싸였다. 이날 오후 6시 발표 예정인 방송3사의 재보선 출구 조사 결과 한나라당이 호남 2곳을 제외한 11곳을 석권할 것이라는 사전정보를 입수했음에도 이 후보 측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서울방송(SBS)이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이 후보를 근소한 차이나마 앞섰다는 ‘급보’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한 핵심 측근은 “설마 설마했는데, 정 의원이 이렇게까지 치고 올라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다른 측근은 “예상했던 대로 이제 정몽준과의 한판승부가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한 특보는 “여론조사 방법이 잘못됐다”며 서울방송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 특보는 “서울방송은 ‘정 의원이 신당의 후보가 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지지도를 물어보았다”면서 “정치 여론조사에서 가정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깼다”고 흥분했다. 이 후보 측근들의 이 같은 ‘엄살’과는 달리 대선기획단 내부의 전략팀은 이미 정몽준 의원이 민주당 신당의 새 후보가 될 것에 대비, 이른바 ‘J파일’을 준비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팀의 한 관계자는 “이미 우리는 여권의 대선전략 시나리오를 알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신당창당에 이은 정몽준 옹립”이라면서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선전략팀이 마련한 J파일의 내용은 무엇일까. 아직 세부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파일은 정몽준 의원의 약점과 민주당이 추진중인 신당의 허점을 예리하게 분석, 공격용 자료를 당에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대선전략팀의 한 관계자가 설명한 정몽준 의원 공격의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
첫째 ‘황태자론’이다. 정 의원은 우리나라 최대의 재벌인 현대그룹 총수의 아들로 태어나 황태자로서의 혜택을 다 누렸다는 것. 여기에는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은 거의 없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부친의 후광과 돈으로 기업가와 정치인이 됐지만 스스로의 능력발휘는 없다. 의정활동도 극히 부실하다.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 출석은 국회의원 중에 거의 꼴찌 수준이다.
축구협회와 기업경영을 위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 의정활동에 몰두하거나 정치력을 발휘한 경험은 거의 없다는 주장. 이 관계자는 두 번째로 현정권과 현대의 밀착설을 들었다. 현정권 초기 기업간 빅딜에서 현대는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에서 현대는 빼앗긴 것이 하나도 없고 얻기만 했다. 빅딜이 진행될 때 언론은 “알짜배기는 현대가 다 먹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빅딜은 현재 현정권 경제정책의 가장 큰 실패작으로 꼽히고 있다.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현대의 대북사업이 맞아떨어져 초기에 의욕적으로 진행됐지만 잇따른 적자와 햇볕정책 논란으로 실패에 가깝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이 정 의원을 공격할 마지막 포인트는 정 의원이 아직 한 번도 정치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행정경험이 없어 국정수행능력이 의심되고 정치의 중심에 서 보지 못해 정치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정 의원이 정당생활을 한 것은 92년 대선 당시 아버지 정주영씨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국민당에 참여한 것 밖에는 없다. 그 외는 4선 동안 줄곧 무소속으로 지냈다. 대선후보로서 거대한 정당을 이끌어갈 정치력이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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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몽준 의원 | ||
이밖에 개인적인 신상문제도 공격대상이다. 한국의 정치특성상 대선후보가 되는 순간 사돈의 팔촌까지 검증의 대상에 오르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 의원 개인과 가족의 약점에 대해 무수한 공격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대선전략팀은 정 의원의 과거 질환까지도 샅샅이 조사해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월드컵조직위, 현대그룹 내부의 반 정몽준 세력을 두루 접촉, 자료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전략팀이 만든 J파일에는 정 의원 개인에 대한 위와 같은 공격포인트 외에도 민주당 신당이 정 의원을 대선후보로 선출했을 때 그 허점을 공격할 내용도 포함돼 있다.
대선전략팀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신당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점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당도 결국 현재 DJ의 정치이념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데, 재벌개혁을 부르짖던 이들이 재벌을 후보로 내세워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시킬지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서민정당, 개혁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정 의원에 의해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노무현 후보를 팽개치고 신당을 만들어 정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을 때 자신들이 스스로 정치혁명이라고 치켜세웠던 지난 4월의 국민경선을 짓밟는 행위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97년의 이인제는 개인의 경선불복이었지만 2002년 신당은 민주당 전체의 경선불복”이라고 주장했다.
대선전략팀은 이밖에 현대와 경쟁관계에 있는 재벌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략팀은 최근 A그룹이 ‘정몽준 대책팀’을 만들었다는 비밀정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이 정보에는 A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정 의원의 대선행보를 총력 저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전략팀은 이처럼 J파일의 부피를 하루하루 늘려가며 차분히 대응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형근 의원이 9일 “9월 남북축구대회와 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 참가 등 최근 남북의 밀월관계는 J의원을 대선후보로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음모”라며 신북풍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상 정몽준 의원에 대한 1차 공격을 시작한 셈이다.
정 의원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비밀방북과 이른바 도라산 프로젝트 등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은 모두 J의원을 옹립하기 위한 의도”라면서 “J의원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 가능성은 이미 합의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면서 “시기가 되면 터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형근 의원은 대선전략팀을 사실상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정몽준 의원의 급부상에 위기를 느끼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정형근 의원을 내세워 신북풍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대선 때까지 줄줄이 잡혀있는 남북관계 일정은 정몽준 의원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정형근 의원이 앞으로 정몽준 저격수로 활동할 것”이라면서 “정몽준 의원이 더 이상 뜨면 위험하다고 보고 일단 공격을 시작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회창-노무현 구도로 흘러가던 대선정국은 8·8재보선을 거치면서 급격히 이회창-정몽준 구도로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내 과반을 확보해 정국 주도권을 잡은 한나라당은 ‘정몽준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