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9월 18일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의 합작법인 설립을 조건부 승인했다. 이에 따라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가 새 합작사 ‘그랜드오푸스홀딩’ 산하로 각각 편입됐다. 합작법인은 해외 직구 시장을 정조준하며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설 전망이다. 현재 온라인 해외 직구 시장 점유율은 알리익스프레스가 37.1%로 1위, 지마켓이 3.9%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공정위는 이번 기업결합 심사에서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 간 국내 소비자 데이터 공유를 전면 차단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양측이 데이터까지 공유한다면 시장에 큰 임팩트가 있을 것이고 경쟁 구조가 무너질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시장 독점 우려가 생길 정도로 파급력 있는 결합”이라며 “일각에서 네이버·쿠팡과의 ‘삼파전’ 전망이 나오는 것도 과도한 해석만은 아니다. 다만 데이터 공유가 제한된 만큼 실제로 어떤 모델과 전략으로 시장에 나올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내 셀러들이 해외에 상품을 판매하는 역직구 시장에서는 데이터 공유가 제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마켓에 입점한 60만여 셀러들은 알리익스프레스의 글로벌 유통망을 활용해 연내 2000만 종에 달하는 상품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진출을 위해 복잡한 서류 절차와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알리 플랫폼에 입점하면 통관·물류·반품·고객관리 등 전 과정에서 알리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지마켓 셀러 사이에서는 과거 이베이코리아 시절 글로벌 판매로 매출을 올린 경험이 있어 이번 협업을 계기로 다시 역직구 수요를 키울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국내 소비자 판매보다는 K-셀러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의 기조와도 일치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매출 확대에 방점을 뒀던 초기와는 달리, 최근 알리는 국내에서 상품 공급사를 확보해 품질 좋은 국산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중소기업·소상공인의 판로 확대를 지원하는 ‘글로벌 셀링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으며, 올해 초에는 한국 상품 전문관인 ‘케이베뉴(K-Venue)’ 입점사들을 대상으로 지원책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합작법인의 첫 해외 진출 무대는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5개국이 꼽힌다. 유통업계에서는 K-컬처 열풍 속에 한국산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동남아 시장을 우선 공략한 것은 전략적으로 유리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남아와 대만 최대의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시아에서 K셀러들의 해외직접판매(역직구)가 60%대로 두드러진 성장세를 나타낸 것으로 파악된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이번 합작이 단기적으로 내수 이커머스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셀러들의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 매입 단가가 떨어지고, 이는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져 다시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지마켓 셀러들의 역량 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의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작으로 국내 소비자 판매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처음에는 한국 소비자에게 값싼 상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내세웠지만 가품·유해물질 논란으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바 있다”며 “신세계와 손잡으면서 국내 대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업고 동일한 품질 관리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만큼 신뢰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공정위 등 정부기관을 상대하는 대관 업무에서도 알리익스프레스 단독일 때와 달리 대관 경험이 풍부한 신세계와 함께할 경우 훨씬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에서는 합작법인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커머스 시장은 이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광고와 마케팅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이용자 유입을 늘리는 순환 구조가 작동하는 만큼 데이터가 핵심 경쟁 요소로 꼽힌다. 공정위가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의 국내 소비자 데이터 공유를 3년간 금지한 데다, 시장 상황에 따라 이 조치를 연장할 수 있어 데이터 제약이 장기적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양사가 가장 기대했던 것도 지마켓이 지닌 국내 고객 정보와 알리의 초저가 상품을 연결해서 쿠팡·네이버쇼핑에 대응하는 방식이었을 텐데 그 부문이 막혔다. 고객 데이터 연동이 안 되면 구매 이력과 성별, 연령, 구매성향 데이터를 활용한 최적화된 마케팅은 불가능해진다”며 “당초 구상한 사업 모델을 그대로 실행하기 어려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약 속에서 사업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합작법인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쿠팡과 네이버쇼핑의 거래액은 각각 55조 원, 50조 원에 달한 반면 지마켓 거래액은 13조 원을 기록했다. 올해 3월 기준 월간활성화이용자(MAU) 수는 쿠팡이 3362만 명, 알리 익스프레스가 912만 명, 지마켓은 11번가와 테무에 이어 687만 명 수준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통은 결국 데이터 싸움인 만큼 3년 동안은 합작사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시장에서 두 회사 모두 큰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선도 업체에 미칠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데이터 결합이 허용된다면 판도가 바뀔 여지가 있지만, 3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너무 길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또한 “지마켓의 MAU가 높으면 훨씬 시너지가 높았겠으나 마케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알리 때문에 지마켓 유입이 늘어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종우 교수는 “역직구 시장 창출과 관련해서도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동남아 시장은 이미 업력이 10년 차가 된 쇼피가 장악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사실상 중국 특화 플랫폼이라 합작법인이 동남아 시장을 새로 뚫어야 한다”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은 국가 차원에서 몇 년 전부터 수출 지원이 집중되면서 우리나라 셀러들의 진입이 상당 부분 이뤄진 상황이다. 생각만큼 블루오션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신세계 관계자는 “합작법인의 핵심 자회사인 지마켓은 알리바바의 전 세계 유통망을 활용한 셀러들의 글로벌 진출을 올해 안에 시작할 계획이다. 셀러의 역량과 고객 만족 모두 확 높이는 독보적인 상생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게 청사진”이라며 “합작법인의 또 다른 자회사인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와 함께 각각 독립적인 운영 체계를 유지하면서 유기적으로 협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