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 | ||
SK그룹의 지주회사제는 최태원→SK C&C→SK㈜→나머지 계열사들로 이뤄지는 구조 때문에 지난 4월 이사회 의결 당시부터 논란을 몰고 다녔다. 지주회사인 SK㈜를 최태원 회장이 아닌 최 회장의 개인 회사나 다름없는 SK C&C가 대신 지배한다는 점이 비판을 받아온 것이다. SK C&C는 SK텔레콤 등에 하는 납품을 주 수입원으로 하는 비상장 계열사로 최 회장은 이 회사 지분 44.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반면 최 회장의 SK㈜ 지분율은 0.97%에 불과하다.
SK C&C 지분구조엔 SK텔레콤(30%)이 주요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자회사나 손자회사가 아닌 SK C&C 지분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2년 안에 전량 매각해야 한다. SK㈜를 지배하는 SK C&C 지분을 다른 곳에 넘기는 데 부담을 느낄 법한 최 회장 일가가 SK텔레콤으로부터 헐값에 SK C&C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SK C&C에 대한 물량 몰아주기를 벌인 후 상장시켜 최 회장은 그 차익으로 SK㈜ 지분을 더 확보하고 SK텔레콤 역시 두둑한 차익을 챙길 것이란 시나리오도 나돈다.
SK텔레콤 지분 처리 논란 외에도 최 회장은 SK C&C를 축으로 한 기형적인 지주회사제를 바로 잡기 위해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8월 29일 SK㈜가 이사회를 열고 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 주식 1400만 주(전체 주식의 15.3%)를 공개매수하기로 결정한 점은 재계 인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17.1%에 머물렀던 SK㈜의 SK에너지 지분율이 지주회사 법적 요건(20%)을 충족시키게 됐음은 물론 최 회장이 돈 한푼 안 들이고 SK㈜ 지분율을 높일 계기마저 마련된 까닭에서다.
SK㈜의 SK에너지 지분 공개매수의 특징은 일종의 주식교환 방식이라는 데 있다. SK㈜는 지주회사인 만큼 상장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확보해야 한다. 반면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지주회사의 지배를 받으면 그만이므로 SK㈜ 지분을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SK㈜는 SK에너지 주주들로부터 SK에너지 지분을 공개매수하게 된다. 현재 SK에너지 주주명부에 있는 최태원 회장이나 부인 노소영 씨, 그리고 SK에너지의 최대주주이자 최태원 회장의 지배를 받는 SK C&C 등의 지분을 매수하는 것이다. SK㈜를 지주회사로 만든 최 회장에게 더 이상 SK에너지 지분 보유는 무의미한 까닭에서다.
SK㈜는 곧 유상증자를 실시할 예정이다. 최 회장 같은 SK에너지 주주들로부터 SK에너지 지분을 넘겨받는 대가로 새로 발행한 SK㈜ 주식을 나눠주기 위해서다. 돈 주고 주식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주식 맞바꾸기를 하는 셈이다. 그동안 SK에너지 최대주주로 군림해온 SK C&C 역시 더 이상 SK에너지 지분 소유가 필요 없으므로 SK㈜와의 주식교환에 응해 SK㈜ 지분율을 더 높일 수 있게 된다.
SK㈜와 SK에너지의 지분이 어떤 비율로 교환될지는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다. 9월 20일 현재 SK㈜ 주가는 17만 4000원이고 SK에너지 주가는 14만 9000원이므로 SK㈜ 1주에 대해 SK에너지 0.9주의 비율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최 회장의 SK㈜ 지분율은 종전의 0.97%에서 1.84%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가게 된다.
지난 4월 SK그룹이 발표한 지주회사제 전환 계획엔 최 회장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이 제외돼 계열분리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돌기도 했다. 어쨌든 최 회장은 SK케미칼 지분을 더 이상 보유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이후 최 회장은 업계 인사들의 예상대로 자신이 갖고 있던 SK케미칼 지분 중 의결권 행사 가능한 보통주 전량을 처분하고 우선주 3.11%만을 남겨놓았다. 최 회장의 SK케미칼 주식 매각 대금은 978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최 회장의 SK케미칼 지분 처분 배경에 대해 SK 측은 “대주주로서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라고만 밝힌 바 있다. 업계 인사들은 최 회장의 SK케미칼 주식 매각대금이 SK㈜ 지배력 강화에 쓰일 것이라 보고 있다. 978억 원은 9월 20일 현재 SK㈜ 주가 17만 4000원으로 환산해 볼 때 SK㈜ 주식 1.51%가량(56만여 주)을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이다.
SK㈜와 SK에너지 주식 교환 이후 최 회장의 예상 지분율 1.84%에 합하면 3.35%가 된다. 결국 최 회장은 종전 지분율 0.97%의 세 배 이상의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할 계기를 지주회사제를 통해 사재 한 푼 안들이고 마련한 셈이다.
SK그룹이 이사회를 열어 지주회사제 전환을 결의한 것은 지난 4월 11일의 일이다. 당시 SK㈜ 주가는 9만 3000원이었다. 만약 지주회사제 전환 없이 최 회장이 SK㈜ 지분율을 0.97%에서 3.35%로 높이려 했다면 얼마의 돈이 필요했을까. 2.38%에 해당하는 88만여 주를 사들이기 위해 826억 원 정도를 들여야 했을 것이다. 즉, 최 회장은 지주회사제로 826억 원어치의 지배력을 향상시킨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