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코스피 지수가 3900선을 터치하며 4000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4000은 종착지보다 경유지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기술 혁신과 안보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적지 않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코스피 5000을 향한 전진이 계속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0일 기준 코스피의 12개월 예상 이익(260조~270조 원)을 기준으로 한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1.78배다. PER이 2021년 고점(14.74배)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지수는 4300~4400까지도 가능하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발 변동성이 어떻게 작동할지와 중국의 디플레이션 탈출 여부, 러시아와 유럽의 안보 갈등 등의 변수는 있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상승 흐름은 유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 변수가 가장 큰 만큼 내년 말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0월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유동성과 인공지능
2025년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에 돌입했다. 양적 긴축(QT)도 중단했다.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주요국 대부분이 금리인상보다는 동결 또는 인하 쪽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할 글로벌 유동성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적과 밸류에이션(Valuation)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글로벌 유동성 확장 주기가 다시 시작되고 한국 기업의 실적까지 개선되면 밸류에이션 매력이 재평가돼 있다고 판단한 외국인의 자금 유입이 재개될 수 있다.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강화 정책은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 상승 기대를 높였다. 특히 최근 코스피에는 국내 기관과 개인 자금도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과거 내국인 투자자가 코스피를 주도했을 때 시장이 급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 등장 이후 AI 수혜는 엔비디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누렸다. 최근 들어 AI 투자는 대규모 자본지출(Capex)로 형태가 바뀌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이를 위한 전략망 구축, 로봇 등 물리적 장치에 AI를 구현하기 위한 투자 등이다. 초대형 기업들이 주도하는 이들 투자는 외부 자금 조달(Equity/Debt Financing) 없이 기업의 자생적인 현금흐름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즉 단기간에 수익을 내야 하는 재무적 부담이 적다.
투자는 자재 및 설비 구매와 인건비 등으로 실물경제에 직접 투입된다. 특히 AI에 대한 투자는 각국이 경제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른바 국가간 경쟁이다. 과거 닷컴 버블 당시와 질적으로 다른, 거품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적 성장이라는 평가가 많은 이유다.
지난 10월 20일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개막식에서 참관인들이 전시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자동차의 부활
AI 관련 인프라가 늘어나고 로봇 수요도 급증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 확실시된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쿠퍼스(PwC)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2024년 6270억 달러에서 2030년 1조 달러 규모로 연평균 8.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 서버 및 네트워크 장비용 반도체 시장은 연평균 11.6%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비메모리반도체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삼성전자의 메모리 수요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의 호조세와 낮은 재고 수준이 결합되면 시장은 공급자 우위가 된다.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 능력에 비례하여 가격 전가력(Pricing Power)을 확보해 이익률을 비약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동차와 2차전지 관련주를 짓눌렀던 두 가지 악재는 관세 전쟁과 전기차 캐즘(Chasm, 신기술이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수요가 정체·후퇴하는 현상)이다. 특히 2차전지는 중국의 초저가 공세까지 겹치면서 시련이 깊었다.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최근 현대자동차와 기아 주가가 가파른 반등세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완성차 및 배터리 업체들의 ‘탈중국’ 수요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자국 시장 방어를 위해 중국산 저가 전기차와 2차전지 수입에 관세 등으로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에코프로 등 주요 기업들의 실적 개선 기대감에 KRX 2차전지 톱10 지수가 10월에만 20% 급등할 정도다.
#종목별 차별화 심화 가능성
현재 코스피 이익 컨센서스가 높아지고 있지만 반도체 쏠림이 강한 결과다. 상당수 업종들의 이익 추세는 정체다. 코스피가 상승해도 이익 성장이 뚜렷한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 간의 종목별 차별화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증시에서 글로벌 경기와 경쟁에 취약한 구 산업(정유, 화학, 철강 등)의 이익 기여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대신, 성장성이 높으면서도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업종들(조선, 방산, 헬스케어·미용 등)의 이익 기여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방산은 글로벌 군비 확장 추세에 상당기간 높은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주는 대부분 방산과 관련이 깊다. 헬스케어와 미용은 전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와 K팝, K푸드, K뷰티 열풍으로 경기흐름과 상관없이 가파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주요 자산 엇갈린 전망…금은 웃고 부동산은 글쎄
코스피가 4000선에 다가섰지만 가격이 오른 것은 주식뿐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주요 자산 가격이 상승세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기회를 놓치거나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감)를 넘어 현금만 가지고 있다면 ‘벼락 거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금이 가장 쓸모 없는(Cash is Trash) 상황이다.
지난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 귀금속점에 금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연초 이후 지난 10월 21일까지 주요 자산별 수익률을 보면 코스피 59.03%, 은 75%, 금 55%, 나스닥 19.58% 등이다. 현금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어뒀다면 연 2.8% 이자율을 감안할 때 현재까지 수익률은 2.3%에 불과하다. 세후 수익률은 1.95%다. 같은 기간 물가가 2%가량 오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다. 예금 금리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올 초 3%를 넘던 정기예금 금리는 하락 추세다. 한국은행이 10월 23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연내 다시 인하를 재개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올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자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채권이다. 예상보다 더딘 기준금리 인하 속도와 재정 부담이 배경이다. 하지만 2026년에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할 새 연준 의장은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 채권금리 하락은 가격 상승이다. 채권도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이나 금·은도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상승세가 유력하다. 전문가들은 코스피는 4400선까지, 금 값은 온스당 4900~5000달러까지 상단을 열어두고 있다. 미국의 달러 무기화에 대한 주요국의 경계가 계속되면 금과 비트코인 같은 대체 자산에 대한 수요 역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애매한 곳은 부동산이다.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10·15대책으로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 급등세엔 제동이 걸렸지만 극단적인 대출 억제 상황이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보유세 강화 여부도 변수다. 규제로 집값을 잠시 누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내년부터 입주 물량이 급감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2022년부터 주택 신규 착공 건수도 급감했다. 정부가 아무리 서둘러 공급을 늘린다고 해도 2030년까지는 신규 주택 공급이 제한되는 수요 불균형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