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크아웃을 딛고 다시 일어선 쌍용건설이 종업원지주회사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사진은 쌍용건설 서울본사 사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IMF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해체된 쌍용그룹은 계열사의 주인이 모두 바뀌었다. 쌍용그룹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쌍용건설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채권단에서 절반이 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쌍용건설은 임직원이 19.91%를 갖고 있고 옛 오너였던 김석준 전 쌍용그룹 회장이 계속 CEO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
다른 쌍용그룹 계열사는 모두 외국계 자본이 대주주다. 유일하게 쌍용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쌍용건설이 M&A 시장에 나왔는데 쌍용건설의 임직원들이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국내 최초의 종업원지주회사를 만들겠다며 인수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쌍용건설의 꿈은 ‘용꿈’이 될 수 있을까.
지난 9월 말 쌍용건설 본사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연일 회의를 거듭하며 임직원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6300억 원 규모의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공사를 수주했고 이를 어떻게 외부에 잘 알릴지 숙고를 거듭했던 것. 임직원들은 언론사 기자뿐만 아니라 정부·채권단 관계자도 맨투맨식으로 마크하며 쌍용건설의 수주를 자세하게 알렸다. 일종의 ‘언론 플레이’를 한 셈이다.
특히 일부 언론에 제공된 자료에서는 이번 공사 수주에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의 폭넓은 해외 인적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 회장은 29세의 나이에 쌍용건설 경영에 몸담았고 줄곧 최대주주였다가 IMF 외환위기 때 지분이 소각되면서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해 쌍용건설 CEO를 맡아왔다.
임직원들이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종업원지주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쌍용건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유동성 위기로 결국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절반이 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고 월급도 반이나 날아갔다.
이런 와중에도 임·직원들은 쌍용건설의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해 증자에 참여했다. 종업원지주회사의 단초는 바로 여기서 만들어졌다. 전 직원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320억 원을 마련, 당시 2000원 하던 주식을 5000원에 매입, 약 20%의 지분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채권단은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의 절반인 24.72%에 쌍용건설 직원들이 우선적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리인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채권단에서 직원들의 회생 노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임직원들은 ‘우리 회사’라는 컨센서스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옛 오너인 김석준 회장을 정점으로 종업원지주회사로 가기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으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재무적 투자자도 확보해놓았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3000억 원가량을 투입할 수 있는 사모펀드와 가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만약 쌍용건설 직원들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우리사주조합 지분 18.35%에 임원 보유 지분 1.71%, 우선매수 지분 24.72%를 합해 44.78%를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다 쌍용양회가 보유한 우호지분인 6.13%를 더하면 50.91%의 지분을 얻어 종업원지주회사로서 경영권 행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쌍용건설 측의 주장이다.
쌍용건설이 종업원지주회사로 출범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수전에 참여할 회사가 적어야 한다. 만약 여러 회사가 경쟁을 벌인다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쌍용건설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가 어렵다. 현재 쌍용건설을 인수할 회사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곳은 STX, 계룡건설 정도로 많지는 않다. 특히 STX는 쌍용중공업이 모태가 돼 정서적인 면에서 가장 적합할 것이란 평가다. 하지만 STX 관계자는 “대한통운에는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쌍용건설은 절대 아니다”고 못 박았다. 계룡건설은 자금면에서 힘에 부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철사인 현대제철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데 이어 건설사인 엠코를 키우려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하지만 건설업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을 것으로 증권가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밖에 한화건설, 유진기업, 태영건설, 한일건설, 오리온 등도 인수후보자로 물망에 오르고 있으나 실제 참여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단은 공개입찰이라는 점 외에 매각방법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캠코 관계자는 “구체적인 매각조건과 일정은 매각심사소위원회 심사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면서 “다만 장내 매각 방식이 아닌 입찰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형성되고 있는 주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 매각하겠다는 얘기다. 최고가 낙찰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만약 최고가 입찰 방식을 하게 되면 경쟁에 의해 가치가 크게 오르고 이에 따라 우선매수 청구 금액도 쌍용건설 직원들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까지 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쌍용건설은 최고가를 써낸 기업이 가져가게 될 것이고 최초의 종업원지주회사는 물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쌍용건설 임직원들은 최고가 입찰을 몸을 던져 막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매각방식은 쌍용건설 M&A의 향방을 가를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조완제 경향신문 기자 jw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