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한 재벌 총수.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구본무 LG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철 철도공사 사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윤 부회장은 지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회 연속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방북단에 참여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인 윤 부회장이 ‘못 낄 자리’는 결코 아니었지만 이건희 회장만이 방북 행렬에 참여하지 않은 배경에 대한 관심도 결코 낮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발표 직후 국내를 대표하는 4대 재벌 총수들은 청와대로부터 방북단 참여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회담 직전 재계 일각에선 방북을 썩 달가워하지 않을 총수들이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4대 재벌 총수들 중 한 명이 일부러 8월 말에 해외일정을 잡았는데 남북정상회담이 10월 초로 연기되는 바람에 머쓱해졌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대북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왕국 계열분리의 주된 배경이라 보는 시각 때문일 것이다.
방북을 부담스러워 할 것이란 재계 인사들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4대 재벌이 선뜻 나선 것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얼마 전 현대차 비자금 사건 항소심에서 사회봉사 명령과 함께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정몽구 회장은 오는 11월 개최지가 결정되는 2012년 세계박람회 여수 유치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일각에선 1심 징역형 선고를 받은 정 회장의 집행유예 감형 배경 중 하나로 국가적 행사 유치 활동을 들기도 한다.
항소심 판결 직전 정부와 현대차의 고위인사가 서울시내 모처에서 회동을 갖고 여수 박람회 유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현대차가 당장 북측에 진출할 사업적 개연성은 낮아 보이지만 현대차 사건 대법원 판결이 올해 안에 나올 것이라 예상해본다면 정 회장이 ‘나라 위한 일’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이다.
남북 경제인 회동에서 집중 논의된 안건 중 하나인 통신사업 분야의 선두주자격인 SK의 최태원 회장에 대해서도 대북사업 진출 외에 또 다른 후광을 노리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 2005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최 회장 재판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얼마 전부터 SK글로벌 사건 대법원 판결이 올해 안에 마무리될 것이란 시각이 제기되면서 최 회장의 워커힐 주식 무상출연 결정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SK그룹 지주회사제 전환이 주목을 받았다. 최근 SK의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총력 지원 선언에 대해서도 대법원 선고를 의식한 것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4대 재벌 총수들 중 2000년에 이어 2회 연속 방북단에 참여한 인사는 구본무 LG 회장뿐이다. 2000년 방북 때 현대가에선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SK에선 손길승 당시 회장이 방북 행렬에 이름을 올렸다. 구 회장은 정몽구 최태원 회장처럼 절실히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번 방북 과정에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오랫동안 등을 돌려온 구 회장이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49명의 친목모임 ‘보통회’의 회장직을 수락한 점이 눈에 띈다. 일각에선 지난해 재계 서열 3위 자리를 SK에 빼앗긴 LG의 구 회장이 이번 방북을 계기로 국내 재계인사 모임 전면에 재등장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번 방북단에 참여한 한 재벌 총수는 지난 7월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당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개최지를 결정하는 투표를 앞두고 이 총수 측이 전담 마크했던 나라의 투표권자가 평창 지지 대신 투표 불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이 총수를 곤혹스럽게 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자칫 국가적 행사 유치를 그르쳤다는 비판에 놓일 뻔했던 이 총수 역시 이번 방북 과정에서 성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윤종용 부회장을 대신 보낸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돈다. 원활한 방북 수행을 위해 2000년 당시 북측 인사들과 안면을 터놓은 윤종용 부회장을 활용하려 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부 비판론자들 사이에선 에버랜드 항소심 결과로 심적 부담을 덜어낸 이 회장이 굳이 무리하면서 방북단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이 회장 직접 방북 무산을 둘러싼 삼성 내부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실적 저하 등으로 삼성 내에선 이미 신수종 사업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진 바 있다.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위해 굴뚝산업에 다시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삼성 주변에서 제기된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음에도 삼성의 자동차 사업 재진출 소문이 다시 업계 인사들 사이에 나도는 점 또한 눈길을 끈다.
대형 제조업에 뛰어들려면 기존 업체들과의 이해와 균형 등을 고려해 정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일부 재계 정보통들 사이에선 특별한 수행원 없이 빡빡한 방북 일정을 소화해내기에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적합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기도 한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 이 회장의 2회 연속 방북 불참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오직 이 회장과 측근인사들만이 알고 있을 터라 이런저런 근거 없는 말들만 쏟아져 나온다는 지적도 뒤를 따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