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유니콘스 인수 대상자로 떠오른 STX의 신사옥 전경. | ||
신문을 꾸준히 챙겨보는 가정주부 이 아무개 씨(34)에게 남편의 질문은 뚱딴지같기만 했다. 2007년 재계 순위 18위(자산 기준·개인 오너십 기업)로 무섭게 크고 있는 기업집단 STX. 하지만 많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뿐이다. 그런 STX가 현대유니콘스 야구단 인수 대상자로 떠오르며 추석 직후 야구팬을 중심으로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현대 (유니콘스) 매각을 협상 중인 곳은 대재벌과 탄탄한 중소기업의 중간치로 뻗어가는 기업이다. (잘 되면) 10월 초까지 좋은 소식이 전해지리라 생각한다.”
신상우 KBO 총재가 지난 9월 28일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이다. ‘뻗어가는 기업’은 결국 STX로 밝혀졌고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야구단의 ‘폭발력’에 STX 측은 적잖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STX 관계자는 “KBO로부터 제안을 받고 검토하고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야구단도 기업이라지만 우리가 지금껏 해온 M&A와 전혀 다른 경우라 검토할 게 많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STX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앞서가는 언론의 보도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 회장은 상고 졸업의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동대문상고를 졸업한 강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쌍용에서 부장을 지낸 후 쌍용중공업에서 이사, 상무, 전무를 지냈다.
2000년 11월 쌍용그룹은 쌍용중공업 지분 34.45%를 한누리증권이 주축이 된 한누리컨소시엄에 매각했다. 당시 CFO(재무담당이사)로 한누리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던 강 회장은 회사 매각 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재무관리 전문가였던 강 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 재직하던 2001년 2월 상여금으로 스톡옵션 1000주를 받은 것과 사재를 털어 쌍용중공업 주식을 매입한 것을 합쳐 오너가 됐다. 당시 주가가 630원에 불과해 강 회장이 어렵잖게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강 회장은 그해 5월 사명을 STX(System Tech-nology eXcellency)로 바꾸고 공격적 M&A에 나선다.
10월에는 경쟁자들의 두 배에 달하는 1000억 원의 매입가를 써내 대동조선(현 STX조선) 인수에 성공했다. 2002년엔 구미·반월공단 열병합발전소를 인수, 에너지사업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서도 경쟁업체들이 범양상선의 주가를 1만 7000원 이하로 봤을 때 강 회장은 2만 2000원대의 가격을 제시해 인수, 지금의 조선 해운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이로써 강 회장은 매출액 2700억 원대의 기업을 6년 만에 계열사 14개, 올 매출액 10조 원대를 바라보는 재계 18위로 성장시켰다.
▲ 강덕수 회장 | ||
이번에 불거진 현대 유니콘스 야구단 인수 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는 사실상 국내 최대 프로스포츠다. 구단을 갖고 있는 기업들도 SK 두산 한화 삼성 LG 롯데 KIA 등 재계 10위권에 근접한 기업들뿐이다. STX가 현대를 인수한다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게 된다.
부침을 거듭한 현대 유니콘스 인수 가격은 80억 원대로 알려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연간 200억 원 안팎의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강덕수 회장의 의지만 있다면 이는 그리 큰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STX 관계자는 “지금 그룹의 주력인 해운 조선업계가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해당기업의 성적도 좋아 주가에도 반영되고 이익도 많이 난다”며 자금은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그런 여유자금을 야구단 인수로 몰아가면 곤란하다”고 경계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일 STX건설과 STX건설산업 합병을 발표하는 등 최근 STX가 주택산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STX건설산업(옛 새롬성원)은 지금껏 약 4만여 가구의 아파트를 건설한 중견 건설업체. STX건설도 올해 대구에 299가구 아파트 공급을 시작으로 아파트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아파트의 소비 결정권을 보통 브랜드 가치가 중요해진 측면에서 볼 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지도 상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의 M&A 과정을 보면 강덕수 회장은 돈이 되는 물건은 과감한 공격으로 반드시 차지하고야 마는 성향으로 분석된다. 돈과는 또 다른 효과가 있는 야구단 인수에 대해 강 회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재계와 스포츠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