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승진한 양홍석 전무. | ||
신년의 들뜬 분위기가 채 가라앉지 않았던 올해 1월 말,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와 며느리인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해야 했다. 양 창업주의 손자(이 회장의 차남) 양홍준 씨가 모로코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전갈이었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지난해 교환학생 자격으로 스웨덴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모로코를 여행하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창업주와 이 회장의 상심은 컸다. 양 창업주의 차남이자 이 회장의 남편인 양회문 전 대신증권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채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은 양재봉 창업주가 200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차남인 양회문 전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그는 폐암으로 투병하다 회장이 된 지 3년 만인 2004년 9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대신증권은 양 전 회장의 미망인인 이어룡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아 회장직을 수행해오고 있다.
그런 상황인 대신증권에 지난 10월 1일 눈길을 끄는 인사가 있었다. 양 창업주의 손자인 양홍석 대신투자신탁운용 상무를 모회사인 대신증권 전무로 임명한 것. 이 회장의 장남인 양 전무는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반이던 지난해 7월 대신증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올해 5월 대신증권 자회사인 대신투자신탁운용 상무로 초고속 승진한 터였다. 여기에 불과 5개월이 못돼 또다시 대신증권의 전무로 올라섰으니 ‘초초고속’ 승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 전무는 지난해 노정남 현 대신증권 사장이 부임하던 시기를 즈음해 공채 형식을 밟아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당시 그는 서울 강남의 한 지점에 배치돼 수습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부친인 고 양회문 회장도 양재봉 창업주의 뜻에 따라 대신증권에 공채로 입사해 업무를 배웠다는 점에서 그의 입사는 경영수업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는 당시 이미 대신증권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는 지난 5월에는 대신투신운용의 상무로 전격 선임되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나섰다. 그리고 10월에 드디어 대신증권의 전무가 된 것이다. 그의 나이가 올해 27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승진 행진은 다소 파격적이다.
▲ 증권가‘빅5’로 꼽히던 대신증권은 양재봉 창업주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 부진한 실적으로 고민이 많다. | ||
대신증권이 다소 무리수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런 경영권 승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까닭은 뭘까. 증권업계에서는 대신증권의 급박한 움직임은 서둘러 후계구도를 만들려는 양 창업주의 의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아들이 떠난 데 이어 손자마저 세상을 등지자 양재봉 창업주가 조급함이나 위기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게다가 양 창업주 본인도 82세의 고령이다.
또 얼마 전 퇴임한 김대송 전 대신증권 부회장이 밝힌 퇴임 이유는 대신증권의 경영 체제와 관련한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김 전 부회장은 1975년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해 32년간 대신증권에만 몸담았으며 말단 사원에서 CEO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로 ‘증권업계의 산 증인’이라고 불린다. 작고한 양회문 전 대신증권 회장과 입사동기이기도 한 그는 30년 가까이 양 전 회장과 함께 회사를 이끌었다. 양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를 불러 “회사를 잘 이끌어 주고 내 자식들도 돌봐달라”며 후사를 부탁할 정도였다.
김 전 부회장은 “양 회장께서 돌아가신 지 2년 8개월이 지났고 그분의 장남이 대신증권에 입사해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어 이제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양 전 회장의 장남이 곧 경영 일선에 합류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여기에 대신증권을 둘러싼 환경도 변화의 필요성을 부채질했다. 한때 증권업계의 리더급이던 대신증권은 양 창업주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 부진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신은 지난해(2006년 4월~2007년 3월) 영업이익 1210억 원을 기록했다. 적자는 아니지만 4437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대우증권이나 235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삼성증권, 우리증권(2259억 원), 한국증권(2123억 원) 등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 양재봉 창업주(왼쪽), 이어룡 회장 | ||
대신증권은 그동안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 6월, 노정남 사장을 대신증권 대표이사로 투입한 것이었다. 양 창업주의 둘째사위인 그는 1987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런던사무소장·지점장·IB담당임원·상품운용본부장·국제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9년부터 대신투신운용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노 사장의 합류를 계기로 대신증권은 ‘삼각편대’로 재편됐다. 이어룡 회장을 정점으로 김대송 당시 부회장과 노정남 사장이 공동대표이사로 경영 자문역을 수행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신증권의 경영상황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오너 일가가 잇달아 경영일선에 등장함으로써 경영권을 둘러싼 억측이 난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재계 호사가들은 양재봉 창업주의 아들들과 사위들 간에 경영권을 두고 신경전이 거세다는 소문을 만들어 냈다. “이어룡 회장 체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왕자의 난’을 방지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그럴 듯한 시나리오였다. 회장을 맡았던 둘째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며느리가 뒤를 잇자 네 명의 아들 중 나머지 세 명이 욕심을 내기 시작한 데다 네 명의 사위 중 둘째사위가 사장으로 들어앉은 것 또한 나머지 사위들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양홍석 전무가 초고속 승진으로 경영일선에 등장함으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신증권의 경영권 향배는 일거에 교통정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남은 것은 대신증권이 증권가의 ‘인재 사관학교’로 불리던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 일일 것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