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정대로 GPU를 공급받으면 AI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에 공급되는 GPU는 최신 ‘GB200 그레이스 블랙웰’로 ‘RTX 6000 시리즈’도 일부 혼합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엔비디아의 GPU는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품귀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전 산업군에 활용 가능한 AI 개발을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GPU가 필수라는 인식이 자리해서다.
국내 기업 소속 한 개발자는 “GPU와 관련해 엔비디아의 대체재가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전 세계 AI 개발자들이 엔비디아의 쿠다를 기반으로 개발에 나섰기 때문에 엔비디아의 독점적인 지위는 사실상 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한국이 공급받기로 한 물량은 영국에 공급하기로 한 12만 장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다. 유럽연합(EU)에 약속한 규모는 10만 장에 불과하다. 독일이 배정받은 물량은 1만 장 수준에 그친다.
엔비디아의 제품군 가운데 GB200이 가장 상위 모델이다. 현 시점에서 엔비디아가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모델이다. 2024년 말 출시돼 2025년부터 고객에게 공급되기 시작했다. GB200은 블랙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이전 최상위 성능의 호퍼 아키텍처 H100를 대체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거대 언어모델(LLM) 추론 성능의 경우 최대 30배 이상 향상됐다. 올해 1월 공개된 딥시크의 저비용 고성능 LLM ‘R1’에 투입된 GPU의 경우 H100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H800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국내 기업 소속의 다른 개발자는 “이번에 엔비디아가 공급을 약속한 GPU는 최고 수준의 모델”이라며 “GPU를 공급받는다고 최고 수준의 AI 모델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해 AI 개발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공장·자율주행·데이터센터에 날개
GPU 공급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전 산업 부문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제조, 금융, 서비스, 건설, 방산, 물류, 헬스케어 분야의 기업들은 AI 기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노리고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서 발표된 ‘2025 글로벌 CEO 설문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글로벌 CEO의 67%는 AI 투자를 통해 1~3년 내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조사에 응한 CEO의 83%는 1년 내 기업 예산의 10%를 AI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엔비디아로부터 GPU 공급을 약속받은 삼성전자, 현대차, SK 등은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에 GPU 공급을 약속받은 기업 한 관계자는 “그동안 AI 기술을 현장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있어왔다”면서 “GPU를 공급받으면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AI 팩토리 인프라를 확충한다. 삼성전자의 AI 팩토리는 설계부터 공정, 운영, 장비, 품질관리까지 제조 과정을 AI가 분석∙예측∙제어하는 스마트 공장이다. 삼성전자는 AI 팩토리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양산 주기를 단축하고 제조 효율성과 품질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엔비디아의 AI 컴퓨팅 기술인 △쿠리소(cuLitho) △쿠다-X(CUDA-X)를 도입해 공정 시뮬레이션 속도를 기존보다 20배 향상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도 AI를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는 AI 기반의 자율비행 드론 2대를 미국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Hyundai Motor Group Meta Plant America) 내에 투입했다. 기존 재고 조사는 평균 300분 이상이 걸렸지만 드론을 도입한 후에는 같은 작업을 30분 내외로 마칠 수 있게 됐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경우 본원 사업인 자동차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AI 개발이 필수다. 테슬라를 필두로 자율주행 모빌리티에 대한 개발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혼다의 경우 2021년 레벨3 차량이 양산됐고, 2022년 메르세데스-벤츠는 S클래스에 레벨3을 적용한 모델이 양산됐다. 현대차그룹은 2027년까지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된 차량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GPU를 5만 장 확보하면서 자율주행 모빌리티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GPU 5만장 이상 규모의 AI 인프라, AI 팩토리를 엔비디아와 국내에 구축한다. AI 팩토리는 제조 AI 클라우드, 울산에서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 ‘엔비디아 GPU 기반의 AI 산업 클러스터’다. SK그룹은 2027년을 목표로 울산에 100메가와트(MW) 규모 ‘하이퍼스케일급’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진행 중이다.
AI 팩토리는 국내 제조 AI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SK그룹은 엔비디아와의 협력해 디지털 트윈과 로봇, LLM 등 학습 및 추론, 3차원(3D) 시뮬레이션 기능을 두루 갖춘 ‘산업용 AI 서비스 공급 사업자’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스타트업이나 연구실 등은 소외 우려
GPU 공급으로 국내 AI 개발에 전환점을 맞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공급하는 GPU가 일부 기업에 쏠려있어 AI 스타트업이나 AI 연구실 등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GPU를 공급받는 기업은 삼성전자(5만 장), 현대차그룹(5만 장), SK그룹(5만 장), 네이버(6만 장) 등 21만 장과 정부에게 공급되는 5만 장 등 총 26만 장이다.
이와 관련, 김휘용 경희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공급되는 GPU 물량이 특정한 기업 위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광범위하게 영향력이 퍼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민간 GPU 클라우드 서비스 민간 사업자로부터 GPU 자원을 임차해 국내 중소·벤처기업과 연구기관에 일정기간 대여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AI컴퓨팅 자원 활용 기반 강화(GPU 임차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사업에서 공급자로 선정된 SKT와 네이버클라우드가 확보한 GPU 등을 국내 AI 기업에 임대 형식으로 지원한다.

전기 수급 문제도 있다. 최상위 모델 GPU는 하위 모델에 견줘 상대적으로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엔비디아 주요 GPU 1개당 소비전력은 1.4kW 전후로 추산, 26만 장이면 총 약 400MW, 여기에 고성능 GPU 데이터센터는 고밀도 랙, 첨단 수랭·액침 냉각, 고속 네트워크 인프라도 필수”라며 “이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신고리 1호기나 새울 1호기 원자로가 반년에서 1년 내내 생산하는 전력이 모두 소모된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도 예정대로 엔비디아의 물량이 국내에 도입돼 운영이 시작되면 400~700MW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현재 전력 규모로 보면 인구 20만 명 규모의 중소 도시 1~2곳의 1년 소비 전력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다만 인프라 구축 여부에 따라 대응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는 시각도 있다. 우선 공급받기로 한 GPU는 5년에 걸쳐 보급된다. 이 기간 GPU 가동을 위한 데이터센터에 대한 전력효율도 높아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병돈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전력량이 현 시점 기준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현 시점에서 GPU를 활용하기에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최적화돼 있지 않다. GPU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최적화가 일어나면 GPU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전력 소비량은 부담되지 않은 수준까지 내려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