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은행을 매입한 론스타 뒤에 ‘검은머리 외국인’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외환은행의 진짜 주인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외환은행 본점. | ||
불법이냐 아니냐를 놓고 공방을 벌여온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관련 논란이 전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론스타 뒤에 숨은 ‘검은머리 외국인’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외환은행의 진짜 주인이 누구냐’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론스타가 아닐 가능성이 크며 숨겨진 실질적 주주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네덜란드계 금융기관인 ABN암로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때 외환은행 주가와 연계된 파생상품을 통해 투자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외환은행의 실질적 주주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정감사 질의서에서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ABN암로가 외환은행 주가와 연계되는 파생상품을 통해 자금을 출자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는 외환은행의 실제 대주주가 론스타가 아닌 ABN암로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론스타는 2005년 3월 자기자금 1704억 원과 차입금 1조 1679억 원을 조달, 총 1조 3383억 원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당시 차입금은 2013년 만기 채권으로 계열사인 KEB홀딩스가 연 6%의 이자율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의심이 가는 대목은 우선 KEB홀딩스다. KEB홀딩스는 조세회피지역에 설립돼 있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로, 여러 펀드들이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경환 의원이 질의한 내용에 따르면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수 자금을 빌린 KEB홀딩스는 네 개의 펀드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KEB인베스터스에는 ABN암로 홍콩지점의 자금이 출자됐다. 이는 ABN암로가 지난해 4월 기업설명(IR) 보고서에서 외환은행 관련 위험가중자산(RWA)이 3억 유로(약 3900억 원)라고 밝혔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스스로 외환은행에 투자한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이상한 대목은 론스타의 공시대로 ABN암로가 6%의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을 인수했다면 수익률이 일정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ABN암로의 지난해와 올 1분기 외환은행 관련 손익은 큰 차이를 보인다.
ABN암로는 올해 4월 25일 IR 보고서에서 ‘외환은행 관련 자산이 지난해 1분기에는 2400만 유로의 부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올 1분기에는 5200만 유로의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는 외환은행 주가가 지난해 1분기에는 12.14% 하락한 반면 올 1분기에는 20% 오른 것과 같은 흐름이다.
매년 똑같은 이자를 받는 채권의 수익률이 주가변동에 따라 요동을 쳤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는 ABN암로가 채권이 아닌 외환은행 주식이나 주식연계파생상품에 투자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 의원 측도 “론스타의 공시와 달리 ABN암로는 채권이 아닌 외환은행 주가와 연계되는 파생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ABN암로가 외환은행의 실제 주주이지만 론스타가 왜 이 사실을 숨기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밝혀서는 안 될 투자자로 ‘검은머리 외국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ABN암로가 외환은행의 실제 주주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더불어 ABN암로 뒤에 또 다른 주주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ABN암로가 외환은행의 주식연계 파생상품에 투자했다면 투자원금의 2.6~3.5배에 이르는 이익을 내야 하지만 실제 2005년 운용수익은 투자원금의 23%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외환은행의 주가차익이 ABN암로 뒤에 숨어있는 투자자의 몫으로 넘어갔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 의원도 “외환은행의 실제 주주는 론스타→ABN암로→검은머리 외국인으로 이어졌으며 론스타는 ‘숨겨져 있는’ 실제 주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행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ABN암로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경영을 위해 의결권을 론스타에 위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도 했다.
ABN암로 뒤에 숨어있다는 제3의 대주주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스탠퍼드펀드가 지목되고 있다. 스탠퍼드펀드는 앞서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차입금을 빌린 KEB홀딩스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개의 펀드 중 하나인 ‘KEB인베스터스Ⅱ’에 돈을 댄 펀드다. 스탠퍼드펀드는 스탠퍼드, 레드펀드, FTA, 킨타이어트러스트가 중심이 돼 자금을 출자했다.
이 때문에 스탠퍼드펀드 역시 채권을 매입한 것이 아니라 외환은행 지분에 투자했거나 주식연계 파생상품을 매입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추측의 근거는 두 가지다. 우선 이 펀드의 투자 대상이 주로 미국 국채와 해외의 저평가된 주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론스타의 투자형태와 맥을 같이하는 투자방식이다.
또 이 펀드를 관리하는 투자회사가 최근부터 외환은행의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낳고 있다. 스탠퍼드펀드를 관리하는 스탠퍼드매니지먼트컴퍼니(SMC)는 올해 3월 말 회사 임원을 외환은행 사외이사(감사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로 임명해 외환은행 경영진에 포진시켰다. 외환은행의 사외이사들은 모두 외환은행 주주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스탠퍼드 역시 적잖은 금액을 외환은행 주식에 투자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론스타 같은 해외 사모펀드의 경우 투자자를 일일이 밝히는 일은 사실상 어려우며 현행법상 대주주 적격 심사 대상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반면 최경환 의원 측은 “결국 외환은행의 실제 주주는 론스타가 아니라 ABN암로와 스탠퍼드 등 해외 금융기관이고 론스타는 단순히 의결권만 위임받아 경영권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론스타가 이들 주주를 숨긴 채 대주주 자격을 취득한 의혹이 커지는 만큼 감독당국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사모펀드의 자금조달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금융당국의 해명에 관해서도 “금융감독당국으로서의 자격 상실이자 직무유기”라며 “사채업자나 불법자금 등이 펀드를 만들어 은행을 인수해도 된다는 말이냐”라고 비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