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텔레콤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상호 씨. 그는 다른 소액주주들과 연합해 소송도 준비 중이다. | ||
“모니터만 보면 머리가 울렁거려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지난 6월 20일 SK텔레콤의 인수 공시를 믿고 에이디칩스 주식을 샀다가 주가 폭락으로 2억 원의 돈을 날린 A 씨의 말이다. 소송위는 A 씨처럼 이렇게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모임이다.
한 포털사이트 블로그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이 모임의 회원 수는 현재 480명. 소송위의 대표인 이상호 씨는 “이번 사태는 공시 문제를 떠나 혼탁하고 후진적인 증시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소송을 준비한 취지를 설명했다. 본인 자신도 창업을 위해 모은 돈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었다는 이 대표는 “우리는 단지 피해보상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약자인 소액투자자 보호 장치를 이번 기회에 강화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송위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번 사태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 첫 번째는 SK텔레콤이 인수 공시를 번복하기 전 이미 그 정보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소송위에서는 공시 전후로 나타난 에이디칩스의 거래량과 주가변화를 들고 있다. 실제로 에이디칩스의 주가는 인수 공시가 났던 6월 20일 이전인 6월 초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5월에 8000원대였던 주가가 6월 1일에 1만 원을 훌쩍 넘어섰고 20일엔 2만 5600원을 기록했던 것.
이뿐만이 아니었다. 에이디칩스의 주가는 SK텔레콤이 인수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하기 이전인 6월 25일부터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소송위 측은 대기업이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전환사채를 인수하겠다고 공시한 에이디칩스의 주가가 갑자기 내려간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에이디칩스의 주가는 6월 25일 2만 4300원을 시작으로 인수취소를 공시했던 7월 2일 1만 6750원으로 내려가더니 10월 23일 종가 기준으로 8050원까지 추락했다.
소송위가 두 번째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사외이사의 ‘월권’이다. 실무진에서 6개월 이상에 걸쳐 인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업을 단 몇 시간의 토론으로 인수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사외이사의 권한을 넘어섰다는 것이 소송위 측의 주장이다. 소송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회의에 참여했던 사외이사 B 씨가 에이디칩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C 사의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부결에 앞장섰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사외이사 중 한 명이었던 김대식 한양대 교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김 교수는 “한 명이 반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처음엔 약간 격론이 오갔지만 만장일치로 부결시킨 사안이었다”라며 소송위 측의 주장에 대해 불쾌해 했다. 또한 그는 소송위 측이 제기하는 사외이사의 월권문제에 관해서 “에이디칩스는 SK텔레콤의 미래 전략방침과 맞지 않았다고 봤다. 우리도 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 모든 자료를 받아 꼼꼼히 확인했다. 우리가 무슨 거수기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소송위 측에서 제기하고 있는 세 번째 문제는 ‘참고사항’에 관한 것이다. SK텔레콤은 인수공시를 할 때 ‘이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할 경우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라는 참고 사항을 공시 내용에 추가했다. SK텔레콤 측은 이 사항을 근거로 당시의 공시는 확정공시가 아닌 조건이 달린 예정공시였으므로 인수취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이사회의 의결에 따라 부결된 사안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인수공시에 투자판단에 참고할 사항을 적시했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관계자도 “우리가 잘못했다면 금융당국에서 무슨 조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소송위 측은 이러한 회사 측의 주장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소송위의 이상호 대표는 “참고는 말 그대로 참고일 뿐이다. 공시 제목이 인수계약 체결인데 어떻게 참고사항이 제목을 번복시킬 정도로 중차대한 항목일 수 있느냐”라고 반박했다. 즉 참고사항은 물량조정이나 인수계약 날짜 정도가 바뀔 수 있다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본질을 바꿀 수 있는 참고사항이 공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SK텔레콤 측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소송위 측의 입장이다.
소송위 측은 SK텔레콤과는 별도로 에이디칩스 측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에이디칩스 역시 인수 취소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을 것인데 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또 자신들에게 협조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대표는 “SK텔레콤의 실사를 받으면서 모든 기업정보를 제공했던 에이디칩스가 뭐가 무서워 가만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에이디칩스의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소송위 측과 분명히 선을 그었다. 에이디칩스가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지만 SK텔레콤에 맞서지는 못할 것이란 게 증권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현재 소송위 측이 파악한 피해액의 집계는 대략 73억 원. ‘개미’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금액이다. 하지만 이들이 피해를 본 투자액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들이 소송을 한다 해도 현재의 법체계 아래에서는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공시와 관련해 투자자들이 피해액을 돌려받은 사례가 전무한 것으로 알려진다.
소송위 측을 가로막고 있는 또 하나의 장벽은 비용 문제다. 소송을 위해서는 1차 비용으로 대략 2000만 원가량이 필요한데 이들이 모은 금액은 56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국소액주주연합회의 지원이 소송전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증시가 2000포인트를 넘으면 뭐하나. 개미들은 피눈물 흘리고 있는데. 피해액을 돌려받는 것뿐만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이번 소송은 반드시 이기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