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부터 2024년까지 20년 동안 연간 최고 흥행작들이다. 20편 가운데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가 14편이나 되고, 20편의 평균 관객 수도 1117만 명이다. 최고 흥행작은 2014년에 개봉한 ‘명량’(1761만 명)이며, 최저 흥행작은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에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475만 명)이다.
20편 가운데 한국 영화가 무려 17편이다. 그 외에는 2010년 ‘아바타’와 2011년 ‘트랜스포머3’, 그리고 2021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 모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마침 이 시기는 한국 영화계가 위기를 겪던 시절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급성장을 거듭한 한국 영화는 연거푸 1000만 관객 영화를 내놨지만, 점점 내수 시장이 침체를 겪으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같은 시기 특히 극심한 불법 복제로 인해 홍역을 앓기도 했다.
여러 제도적인 보완으로 불법 복제 피해가 점차 줄어들고 부가판권 시장이 안정되면서 2012년 이후 한국 영화계는 더 큰 발전을 이룩했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급증해 거의 매년 두 편 이상의 1000만 관객 영화가 탄생했는데 2014년에는 4편, 2019년에는 5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등장했다.

이후 2022년 ‘범죄도시2’, 2023년 ‘서울의 봄’, 2024년 ‘파묘’가 1000만 관객 영화에 등극하며 연간 최고 흥행작에 국내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위기를 맞은 한국 영화계는 다시 되살아나는 분위기를 형성했지만 올해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나마 여름 성수기인 7월 30일에 개봉한 ‘좀비딸’이 563만 6944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연간 최고 흥행작 자리는 지켜 내는 듯했다. 연초부터 극장가가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지만 ‘좀비딸’은 정부가 배포한 국민 영화관람 할인 쿠폰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 ‘남산의 부장들’이 기록한 475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했어도 한국 영화는 다시 연간 최고 흥행작 자리를 빼앗기게 됐다. 8월 22일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11월 22일 ‘좀비딸’을 밀어내고 연간 최고 흥행작 자리에 오른 것. 최근 20년 동안 연간 최고 흥행작을 외화에 내준 것은 단 3번으로 모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는데, 이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그 자리를 내줬다.
겨울 극장가에서 대반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2023년 최고 흥행작 ‘서울의 봄’은 11월 22일 개봉해 겨울 성수기까지 흥행세를 이어가며 1000만 관객 영화 반열에 올랐다. 그렇지만 올해는 연말까지 개봉이 예정된 한국 영화 가운데 별다른 기대작이 보이지 않는다. 극장가 침체로 한국 영화 흥행 성적이 저조해지면서 투자 시장까지 얼어붙어 한국 영화는 제작 편수 자체가 크게 줄었다. 블록버스터급 대작 영화 제작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올해에는 겨울방학 성수기 시즌에 개봉할 텐트폴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부분은 연간 최고 흥행작을 외화에 내준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년 할리우드 영화는 탄탄한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다. 디즈니와 마블은 ‘모아나(실사판)’, ‘토이 스토리 5’, ‘만달로리안 & 그로구’,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어벤져스: 둠즈데이’ 등의 대작들을 연이어 개봉할 예정이며, DC의 ‘슈퍼걸: 우먼 오브 투모로우’,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디 오디세이’ 등도 내년 개봉 예정이다.
이에 맞서는 한국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 나홍진 감독의 ‘호프’, 연상호 감독의 ‘군체’,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 등이다. 연이어 1000만 관객 신화를 쓴 ‘범죄도시’ 시리즈 5편이 2027년 개봉 예정이다.
내년 최고 기대작은 ‘휴민트’다.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등 탄탄한 출연진도 돋보이지만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부분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2015년 연간 최고 흥행작인 ‘베테랑’을 연출한 류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2021년 ‘모가디슈’, 2022년 ‘밀수’, 2023년 ‘베테랑2’ 등을 선보이며 꾸준히 흥행 레이스를 펼쳤다. 올해 한국 영화가 연간 최고 흥행작을 놓친 결정적 이유로 ‘범죄도시’ 시리즈와 류 감독의 신작이 모두 개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왔을 정도다.
김은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