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자아로서 제게는 어려운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어요. 이것을 어떻게 전하는 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누군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마음보다 저부터 먼저 이 이야기에 당당하고자 했죠. 그런 마음들을 되짚어 가면서 ‘당신이 죽였다’와 은수를 만들어 나갔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는 극심한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죽이기 위해 살인을 공모하게 된 두 절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전소니는 절친한 친구 희수(이유미 분)가 남편 진표(장승조 분)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계획한 은수를 연기했다.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VIP들을 상대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온 은수는 과거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고통 받는 엄마를 외면했다는 아픔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엄마는 제때 구해내지 못했지만, 친구 만큼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일념만으로 ‘완전 범죄 살인’이라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아버지의 폭력에 속절없이 당해온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는 은수의 죄책감은 그가 수련하는 주짓수를 통해서도 조금씩 드러난다. 타격기가 아닌 관절기 기반의 주짓수는 숙련된 여성이 남성을 이길 가능성이 높은 격투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남성의 ‘신체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을 그려내는 데엔 이보다 더 확실한 소재가 없는 셈이다. 주짓수를 이용해 은수는 대련 상대방인 남성은 물론, 가정폭력 가해자들과도 맞붙으며 ‘밀리더라도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리 주짓수라고 해도 힘만 가지고 붙었을 땐 여자가 남자를 이기기 어려워요. 하지만 끈질기게 붙어서 어떻게든 버티며 다시 기술을 걸면 ‘희망’이 보이죠. 단편적으로 보기엔 은수가 다른 남자들에게 적수가 안 되지만, 그래도 상대의 힘 자체만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은수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촬영 전 합을 맞출 때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을 엄청나게 써야 했는데, 동성이든 이성이든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오래도록 질질 끌며 승부한 건 처음이었죠(웃음).”
이 같은 전소니의 ‘끈질긴 버티기’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이 작품의 초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 두 절친의 ‘남편 죽이기’ 신이었다. 잔인한 폭력성을 인간의 형태로 빚은 것 같은 남자를 상대로 작고 마른 두 여자가 얻어맞고, 던져지면서도 마지막까지 버티며 끝내 살인에 성공하는 이 신은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 장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보신 시청자 분들께 시원함을 드리고 싶었다”는 전소니는 촬영 당시, ‘죽어 마땅한’ 남편 역을 연기한 배우 장승조가 겪어야 했던 심적 딜레마를 언급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최악의 남편’이 스스로에게 몸서리치는 동안, ‘매 맞는 아내’를 연기한 이유미는 반대로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했다. 영화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등 강렬한 작품에서 여러 번 맞고,구른 경험치를 지닌 이유미는 전소니에게 있어 이번 작품의 등대이자 닻이며, 이정표이기도 했다. 은수로서 존재해야 하는 자신이 흔들리려 할 때마다 굳건히 중심을 잡아줬다는 게 전소니의 이야기다.
“유미는 정말 에너제틱한 사람이에요. 보기엔 여리여리해 보이는데, 현장에선 힘이 넘치고 항상 밝아요. 통통 튀는 사람이라 저는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편안해지더라고요. 촬영하다 보면 저 스스로가 은수와 희수에 대해 살짝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유미에게 많이 의지하곤 했어요. 제가 생각한 은수의 속내를 이렇게 표현해도 될 지 물어보면 유미는 ‘나는 그게 맞는 것 같아. 그게 은수인 것 같아’라고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연기할 수 있었죠.”
11월 7일 공개된 ‘당신이 죽였다’는 배우들의 호연과 한 번 재생하면 멈출 수 없는 서스펜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공개 2주차에 71개 국가에서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앞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로 해외에서 큰 호평을 얻은 전소니에게는 다른 넷플릭스 전문 배우들이 그랬듯 ‘넷플릭스의 딸’이라는 별칭이 붙을 법도 하다. “이미 넷플릭스의 딸이랑 아들이 너무 많지 않냐”며 웃음을 터뜨린 그는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더 다양한 연기 변주를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진짜 어떻게 하다 보니 ‘기생수: 더 그레이’, ‘멜로무비’에 이번 작품까지 연달아 넷플릭스에서 보여드리게 됐네요(웃음). 저에겐 다행이고, 또 너무나도 좋은 일이죠. 워낙 ‘넷플릭스의 딸‧아들’이 많으니까 저는 그거 말고 다른 신박한 걸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떠오르는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넷플릭스의 애착 인형이 되고 싶다’고 했죠(웃음). 무엇이 됐건, 최대한 쉬지 않고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제 다른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