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얼굴과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담덕 모습을 합성한 사진.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자산운용사라는 특성상 투자가치에 우선적 목적이 담겨있겠지만 해당 재벌들은 미래에셋의 최근 지분 매집 과정을 그리 편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여러 대기업 핵심 계열사 임원들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을 만나기 위해 번호표 뽑고 대기 중’이란 우스갯소리가 업계 인사들 사이에 나돌 정도다. 얼마 전 삼성전자 측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을 정도로 기세등등해진 박 회장과 미래에셋의 최근 주식 매집엔 어떤 뜻이 담겨있는 것일까.
미래에셋은 최근 삼성증권 지분을 매집해 지분율을 11.4%까지 끌어올렸다. 삼성증권 기존 최대주주인 삼성생명(11.38%)보다도 지분율이 높아진 것이다. 삼성증권은 자본시장통합법 시대에 삼성은행 탄생 산파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삼성의 핵심 금융 계열사다. 삼성증권의 지배구조 맨 위에 선 미래에셋이 향후 삼성의 금융업 확대에 어떤 변수를 미칠 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그룹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분가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 회장의 두 딸들이 속한 회사들 역시 미래에셋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건희 회장 장녀 이부진 상무가 재직 중인 호텔신라 지분 11.38%를 보유해 1대주주로, 차녀 이서현 상무보가 있는 제일모직 지분 10.03%를 보유해 한국투자신탁운용에 이은 2대 주주로 군림하고 있다. 두 회사의 삼성 우호지분율은 각각 16.56%와 7.49%로 취약한 편이다.
미래에셋은 최근 삼성물산 지분 추가 매집으로 지분율을 8.57%까지 올려 기존 최대주주인 삼성SDI(7.39%)를 앞질렀다. 핵심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지닌 덕에 삼성 지배구조 논란이 등장할 때마다 새 지주회사 후보로 주목받는 삼성물산 지분구조의 제일 높은 곳에 선 미래에셋이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미래에셋의 LG그룹 지분 늘리기도 업계 인사들의 입방아 단골메뉴 중 하나가 됐다. 미래에셋은 10월 한 달 동안 그룹 지주회사인 ㈜LG 지분을 꾸준히 늘려 지분율을 5.75%까지 높였다. 미래에셋의 ㈜LG 지분 5.75%는 구본무 LG그룹 회장(10.51%)과 구본준 LG상사 부회장(7.58%)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미래에셋의 지분 매입 행보는 구본무 회장의 양자이며 LG 구씨가의 장손인 구광모 씨의 ㈜LG 지분율 변화와 비교되기도 한다. 구광모 씨는 지난 8월 31일과 9월 3일, 10월 2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총 276만여 주를 매입해 지분율을 종전의 2.85%에서 4.45%까지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구 씨 일가 방계인사들의 ㈜LG 지분 매각이 줄을 이으면서 ‘구광모 씨에게 지분을 몰아주기’라는 의혹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미래에셋의 ‘10월 대공습’으로 그 빛이 퇴색했다는 평이다.
▲ 미래에셋 대기업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 (11월 2일 기준) | ||
미래에셋의 한진 지분율도 지배구조와 관련해 눈길을 끈다. 미래에셋은 지난 9월 초부터 ㈜한진 지분을 사들여 지분율을 종전의 14%에서 15.99%로 늘렸다.
㈜한진에서 미래에셋보다 더 높은 지분을 지닌 주주는 최대주주인 정석기업(16.48%)뿐이다. 정석기업은 최근 들어 조양호 한진 회장 동생인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유족들의 ㈜한진 지분을 사들이는 등 지분율을 높여왔다.
한진그룹은 ㈜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한진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취하고 있어 ㈜한진 지분율 향배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가 재편될 여지도 있는 셈이다. 정석기업의 지분율 강화와 미래에셋의 지분 매집이 마치 최대주주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듯 이뤄져온 점이 눈길을 끈다.
미래에셋은 한진해운 지분도 10.85% 갖고 있다. 이는 조양호 회장 휘하의 ㈜한진(0.48%)과 한진 계열인 대한항공(6.25%), 한국공항(4.33%)의 지분율을 다 합친 11.06%에 육박하는 수치다. 미래에셋의 입김이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에 대한 영향력에 미칠 변수가 되기에 충분한 셈이다.
미래에셋은 전선업의 세계적인 호황과 주가 강세 바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0월 한 달 동안 LS전선 지분을 사들여 지분율을 종전의 13.17%에서 14.96%로 높였으며 대한전선 지분도 꾸준히 매입해 지분율 8.2%에 이르고 있다.
LS그룹과 삼양금속그룹은 각각 LS전선과 대한전선을 지주사로 삼는 지주회사제 전환을 준비 중이다. 전선업 호황과 지주사 특수로 인해 미래에셋증권 등은 지난 9~10월 전선주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으며 이는 해당 주가 상승 요인이 되기도 했다.
미래에셋은 지주회사제 전환작업을 진행 중인 두산 지분구조에도 비중 있게 참여하고 있다. ㈜두산 지분을 12.11% 보유하고 있는가 하면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 지분 5.64%를 10월에 사들여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들어 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둔 두산 총수일가의 자사 지분 집중 매입이 이뤄지는 동안 미래에셋도 꾸준히 두산 계열사 지분을 늘려 두산 지배구조에서의 존재감을 키워온 것이다.
삼성 LG 한진 LS 두산. 미래에셋은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대한민국 대재벌들의 지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이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나 분쟁 혹은 분가에 있어서 미래에셋과 박현주 회장의 영향력은 결정적일 수 있다. 미래에셋은 이미 지난번 업계 1위 동아제약 경영권분쟁에서 그 파워를 보여준 바 있다. 최근 회자되는 ‘미래에셋공화국’이란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닌 이유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