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시장 침체가 계속되자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싼 값에 거두는 이삭 줍기론이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이 없다. | ||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미분양 아파트는 모두 9만 8235가구로 지난해 말 대비 33.2%가 증가했다. 완공이 됐음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곳도 1만 5412가구나 됐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내집 마련 시기를 저울질하던 실수요자들조차 손을 놓은 상태다. 이들은 시장을 관망하면서 청약통장을 사용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향후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청약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청약률 0%’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부산 등 지방의 경우 분양가보다 분양권 가격이 낮은 ‘마이너스 프리미엄’ 현상이 발생했다.
많은 부동산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 침체가 내년에도 이어지면서 이러한 미분양 사태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등 부동산시장은 사실상 암흑기로 접어든 모습이다. 외환위기 직후 분양시장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하다.
먹구름이 잔득 낀 부동산 시장이지만 신발 끈을 묶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향후 돈 될 만한 미분양아파트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투자자들이 그들. 이른바 알짜 부동산을 싼 값에 거두는 ‘이삭줍기론’이 떠오르는 것이다.
미분양아파트는 청약통장, 청약가점제 등 복잡한 제약이 없이 선착순 분양을 하기 때문에 맘에 드는 아파트를 미분양 되기까지 기다렸다가 분양받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분양 중인 경기 양주 고읍지구는 사실상 ‘순위 내 청약’은 사라지고 ‘선착순 분양’이 대세가 됐다. 선착순 분양 대기자는 넘쳐난 데 비해 순위 내 청약에서는 대거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미분양 아파트를 노리는 이들이 과연 옳은 판단을 한 것일까. 사실 미분양아파트에 대한 접근 방식을 놓고 최근 물밑에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곳은 바로 부동산포털 ‘닥터아파트(www.drapt.com)를 이끌고 있는 오윤섭 대표. 오 대표는 ‘오윤섭의 부자노트’라는 코너에 ‘미분양사태 3년 지나면 집값 상승한다?’라는 칼럼으로 논란의 불을 댕겼다.
그는 과거 미분양 역사를 보면 미분양 사태가 2∼3년 이상 장기화되면 주택건설업체 부도가 늘고 이어 주택건설이 줄어 주택공급물량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공급물량 급감은 결국 2∼3년 후 집값 상승을 가져왔다는 것. 실제로 1985년과 1998년 대규모 미분양 사태는 각각 1988년과 2001년에 3년 이상 집값 급등을 초래했다.
이에 2007년 미분양 사태가 2010년 공급부족으로 인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지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는 전매 제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분양원가 공개와 함께 규제정책의 누적효과로 인해 주택공급을 중단시키는 사태까지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2008년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집값 안정을 유지하며 내놓을 수 있는 미분양 해소책은 많지 않다는 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5년간 지속된 규제정책의 후유증이 워낙 깊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미분양 물량은 2008년 상반기에 최대에 이르면서 주택시장은 더욱더 불확실해질 것”이라며 “과거 불확실한 주택시장에서 가치투자자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 미분양사태에서 최대의 수익을 올린 투자자들은 1년 앞서 투자하고 3년 이상 장기 보유한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모습은 어땠을까. 지난 2000년 6월, 경제신문에 삼성 타워팰리스를 선착순 분양한다는 기사가 떴다.
삼성물산이 그 해 2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분양한 삼성타워팰리스Ⅱ의 계약해지 물량을 분양 중으로 55층 높이로 주변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자세히 설명한다. 또 이 일대가 타워팰리스Ⅰ과 대림아크로빌 등이 위치한 초고층아파트 타운이어서 발전전망도 높은 편이라고 나름대로 전망을 내놨다.
실제로 1998년 타워팰리스는 분양률 63%의 미분양 상태로 청약통장이 없어도 누구나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었다. 타워팰리스의 3.3㎡(1평)당 분양가는 900만∼1000만 원 선으로 타워팰리스1차 115.7㎡(32평)형의 경우 분양가는 3억 4200만 원이었다. 물론 타워팰리스는 지난 10년 동안 4∼5배 이상 올랐고 이제 서울에서 3.3㎡당 1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찾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동양종금증권 이광수 애널리스트도 “최근 미분양 사태의 본질은 일시적인 공급 증가에 따른 국지적, 단기적 문제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를 전체 주택시장으로의 확대하거나 향후 주택시장의 전망까지 어둡게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 시장에선 미분양아파트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8% 안팎으로 치솟으면서 위축된 시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란 우려가 많다. 또한 이제 미분양 물량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섣부르게 행동하기보다는 좀 더 시장 상황을 관망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오는 2008년부터 수도권에선 2기 신도시를 비롯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 분양가격이 싼 아파트 공급이 줄을 이을 예정이어서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단지에서의 미분양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당분간 집값 상승이 어려운 만큼 매수 자체를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 역시 “세금·대출압박에 따른 금리상승 등 악재가 여전히 겹겹이 쌓여 있는 상황”이라며 “급매물이 나오는 상황에서 고분양가로 인한 미분양아파트는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만약 미분양 아파트에 미련을 못 버리는 실수요자라면 주변 아파트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있는 일부 인기 단지에서 나오는 초기 분양을 과감하게 잡을 필요가 있다”면서 “완공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분양이 되지 않는 곳은 쳐다 보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조언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