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영향은 모든 산업에 균등하게 미치지 않는다. 어떤 산업은 초토화되고, 어떤 산업은 오히려 더 강해진다. 이 양극화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하는 일을 세 개의 계층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계층은 ‘AI가 자동으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작업’이다. 보고서 작성, 데이터 분석, 코딩처럼 텍스트나 숫자, 코드 등 디지털로 표현 가능한 모든 일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계층은 ‘판단과 책임’이다. AI가 쏟아낸 10개의 보고서 초안 중 어떤 것이 진짜 쓸 만한지 결정하고, 그 분석 결과에 최종 서명하며, 판단이 틀렸을 때 결과를 책임지는 역할이다. 이것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롯이 인간의 영역이다.
세 번째 계층은 ‘물리적 실행’이다. 고객의 집에 직접 방문해서 보일러를 수리하거나 아픈 사람을 대면해서 돌보는 일이다. AI가 훌륭한 수리 매뉴얼을 1초 만에 작성해줘도, 당신 집에 직접 와서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워줄 수는 없다.
AI가 1계층의 디지털 지식 노동을 거의 공짜로 쏟아내면서 진짜 희소성과 경제적 가치는 AI가 할 수 없는 2계층(판단력)과 3계층(물리적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만약 당신의 회사가 주로 보고서, 코드, 디자인 시안 같은 1계층의 결과물을 팔아왔다면, 이제 그것은 더 이상 특별하거나 희소하지 않다.
가장 위험한 자리는 역설적이게도 중간 규모의 전문 서비스 기업들이다. 50명 규모의 마케팅 에이전시를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이들의 경험과 신뢰가 강력한 경쟁 우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양쪽에서 압박을 받는다. 아래에서는 AI로 무장한 서너 명짜리 팀이 견적의 3분의 1 가격으로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위에서는 거대 플랫폼 기업이 AI 기능을 추가하며 더 큰 규모와 저렴한 비용으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간에 낀 기업들은 아래쪽의 비용 경쟁력도, 위쪽의 규모와 유통망도 없다.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이며, 바로 이 중간지대가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쟁이 치열해진 디지털 시장의 중간에 낀 기업이라면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째, 극도로 효율화하는 것이다. 소수의 핵심 정예 팀이 AI를 손발처럼 부리면서 현재와 같은 생산성을 내도록 조직을 재설계해야 한다. 경쟁 상대를 3인조 스타트업으로 봐야 한다.
둘째, 가치 사슬의 상위로 이동하는 것이다. 더 이상 보고서나 디자인 시안을 파는 것을 멈추고 판단력과 책임을 팔아야 한다. “캠페인 기획안에 5000만 원”이 아니라 “6개월 안에 고객 전환율을 15% 높여주겠습니다. 그 결과에 1억 원을 청구합니다. 달성 못하면 비용을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AI로 기획안을 만드는 것은 내부 효율화 수단일 뿐, 고객에게 파는 것은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어야 한다.
가장 위험한 함정은 이 두 선택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머무는 것이다. 50명 직원이 일해야 하던 사업 모델을 그대로 둔 채 AI로 업무 효율만 약간 높이려는 시도는 오히려 독이 된다. 한 번역 회사가 AI 도입으로 업무 생산성을 20% 증가시켰지만, 그 회사와 경쟁하는 프리랜서 한 명이 보다 최적화된 AI 도구로 그 회사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인가. 조직의 무게는 그대로 두고 효율만 높이는 것은, 경쟁의 답이 될 수 없다.
반면 배관, 수리, 치과처럼 물리적·지역적 시장에서 일하는 기업이라면, AI 투자는 후선 업무 효율화에 집중해야 한다. 예약 자동화, 고객 소통, 청구서 관리 같은 것들이다. AI 기업으로 변신할 필요는 없다. 원래 잘하던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AI를 도구로만 쓰면 된다.
AI로 무장한 소규모 팀이나 1인 창업자라면, 단순히 “AI로 더 싸고 빠르게 만듭니다”라는 가치 제안으로는 끝없는 가격 경쟁에 휘말린다. 당신과 똑같은 도구를 쓰는 경쟁자가 매주 수십 명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2계층의 병목 지점을 장악해야 한다. 특정 산업에 깊이 파고들어 AI 결과물을 검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전문성을 쌓거나, 고객의 업무 과정에 깊숙이 통합되어 대체 불가능한 솔루션이 되어야 한다.
거대 기업의 진짜 위협은 밖의 스타트업이 아니라 내부의 인재 유출이다. 최고의 인재들이 “이 회사는 너무 느리다”며 떠나는 순간, 조직의 AI 전환은 실패한다. 거대 기업의 AI 투자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혁신과 연결되어야 한다. 최고의 인재들이 회사 안에서도 AI 네이티브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과제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경제 지형 자체의 재편이다. 당신의 AI 전략은 이 재편된 지도 위에서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을 세 개의 계층으로 나누어보라. 당신이 파는 것이 주로 1계층의 결과물인가, 2계층의 판단과 책임인가, 아니면 3계층의 물리적 실행인가. 그 답에 따라 당신의 생존 전략은 완전히 달라진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윤석 마이크로소프트 Tech PM

